MVIO and Han Sang hyuk (엠비오와 한상혁)






수요일 저녁, 원고를 마치고 집에서 붕 뜬 시간을 음미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엠비오(MVIO)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한상혁의 전화였다. 본에서 회사를 옮기고 엠비오로의 첫 번째 컬렉션. 2주 전인가 만나서 술을 마셨을 때 처음 들었던 컨셉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그가 바라보는 자신과 주위에 대한 이야기였고, 지난 시간 동안 쌓았던 많은 것들이 바뀌거나 사라진 지금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기에 드는 부담감도 느껴졌다. 그는 내게 이번 쇼는 정말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느껴지는 흥미로운 요소들에 대한 들뜬 설명과 얼핏 아이처럼 초롱초롱한 그의 안경 속 눈빛을 보면 여전히 그의 쇼를 기대하게 된다. 나는 그의 지인이기 전에 디자이너로서 그를 좋아하는 팬이기도 하니까.

전화의 목적은, 저녁에 약속이 있는데 같이 만나서 얘기를 하자는 것. 그와의 술자리에서도 종종 나왔던 화두이지만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역시 '바잉(buying)'이다. 아쉽고 안타깝게도 국내 디자이너가 국내의 편집매장에서 구입으로 연결되어 행거에 걸리는 일은 거의 없다. 디자이너들은 유통업체들 - 편집매장이든 백화점이든 - 에 대해 항상 '을'이고, 그렇다면 '갑'인 그들과 상생하는 방법은 정말로 없는 것인지. 마침 때가 불황의 한 가운데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고 또 목말라하는데, 그런 것에 화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진정 깰 수 없는 철옹성 같은 것인지. 또한 젊은이들이 요새 보이는 멋드러진 편집매장에 매혹되어 바이어를 꿈꾸는 듯 보이지만, 그 체계 안에 어떻게든 귀속되려고만 하지 지금의 바잉 시스템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하며 고민하는 이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이것에 대해서는 더 많은 실무자들 - 바이어, 디자이너, 숍 스태프, 프레스, 머천다이저 등 - 과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지만, 그의 말대로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가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 것, 우리가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플라스틱으로 칠한 가짜 돌덩이라서, 어딘가 바뀔 수 있는 갈라진 틈새가 있는 것은 아닐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실 지금의 상황은 지난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정도의 어떤 변화들이 있던 것은 아니던가. 세상에 보그 코리아(VOGUE Korea)에 젊은 우리나라 신진 디자이너들의 소개가 이렇게 자주 들어간 적이 언제 있었던가.

결국 문제는 시스템이다. 이 불황에 편집매장의 사람들과 기자들과 내셔널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은 변함 없이 출장을 간다. 모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왜 파리로, 뉴욕으로, 밀라노로 가는가. 그곳은 이미 그곳의 산업, 상업적인 시스템이 확고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나라처럼 디자이너들의 편집매장 입점이 수수료로만 돌아간다면? 과연 누가 파리에, 뉴욕에 가서 직접 바잉을 해가지고 오겠는가. 한국에서는 디자이너가 '을'이다. 디자이너는 재고를 고스란히 안으니까 남아도 처리해야 할 당사자는 엄밀히 말해 디자이너가 된다. 하지만 국내의 편집매장은 해외의 디자이너들에게 몇 퍼센트의 수수료 같은 것을 주고 옷을 가져오지 않는다. 선결제이든 후결제이든, 100% 돈을 지불하고 주문량만큼의 옷을 구입한다. 물론 재고는 매장의 몫이다. 두 가지를 모두 보면 어딘가 한 곳이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타협점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온 묘안이 기존의 우리나라 대형 유통업체들처럼 수수료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이것은 현재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불합리한 구석을 모두가 느끼면서도 누구도 수술대에 올려놓진 못하고 있다. 하나를 바꾼다고 바뀔 영역도 아니고, 개인이 위험부담을 전부 안기에는 들어야 할 유/무형의 손실도 꽤나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어리석게도, 혹은 순진하게도 바랐던 작은 변화들. 제법 치열한 논의도 여러 번 있었지만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은 어떤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한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실패도 해봤지만, 그래도 미련하게 그것을 생각하고 바꿔보려는 행동이 꼭 바보 같은 짓만은 아니니까.

2009년도 가을/겨울 시즌의 서울 패션 위크가 3월 26일 정오, 한상혁의 엠비오 컬렉션을 시작으로 그 막이 오른다. 어제의 술자리에서는 한상혁에게 직접 VIP 초대장을 받았다. 네모낳고 작고 단단한 종이 상자의 금속 손잡이를 열면 촉감이 부드러운 종이에 정말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 있고, 그것을 읽어야 하는 목걸이 형태의 금속제 돋보기가 들어 있다. 돋보기를 초대장으로 넣은 이유는, 이번 쇼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 눈을 찡그리고 돋보기를 종이에 들이대면 쇼의 컨셉과, 날짜와, 시간 등을 읽을 수 있다. 참고로 이 돋보기가 없이는 쇼의 VIP 입장이 불가능하므로 반드시 지참해야 할 것이라 했다. 이런 위트를 그의 옷에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한상혁의 작업을 좋아하는 이유가 된다.

갑자기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어느 유명한 일본의 비쥬얼 크리에이터의 블로그를 보다가, 그가 루이뷔통의 마크 제이콥스와 예술가 타카시 무라카미와 함께 작업했던 슈퍼플랫모노그램에 대한 글을 읽다가 문득, 이었다. 나와 동시대를 사는 그런 날고 기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위축되는 것을 느끼지만, 나 또한 그들이 모르는 어딘가에서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만나고 인사하고 같이 무언가 하는 일도 생기지 않을까, 하고 혼자 주문 아닌 주문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 주위, 내 옆에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의 이야기와 작업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한 번 더 마음에 담는 것이다.

3월 26일 12시에 열리는 쇼는 시작하기 전부터 들어가서 눈과 귀와 렌즈에 담을 생각이다. 멋진 디자인을 보여주는 브랜드와 디자이너라서만이 아니라 그가 하는 생각과 꿈꾸는 것들이 나를 두근거리게 만든다. 그의 첫 번째 엠비오 컬렉션을 기대한다.

MVIO by HAN SANG HYUK
AUTUMN WINTER 2009-2010
'HOLMES COLLECTION'
pm 12:00, Thursday 26th March 2009
SETEC S14 Daechidong Gangnamgu Seoul Korea

www.seoulfashionweek.org


written and photographs by Hong Sukwoo 홍석우 (yourboyhood@gmail.com)
fashion journalist / photographer of yourboyhood.com

Comments

  1. What a cute invitation =) I wonder if I can find a magnify glass necklace like that at a vintage 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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