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 March 12, 2010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요, 라고 말하면서도 어쩌면 그 이유 중 하나가 '일기'를, 아니면 글을 쓰지 않아서인가 싶다. 글은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치유한다. 치유라고 거창하게 말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차분하게 만든다. 사실 지금도 바로 나가야겠지만 쓰는 거다. 전화는, 일 외에 울리지 않는다. 잡지사, 은행, 광고대행사, 몇몇 메신저 안부들. 돌아볼 겨를이 없다는 핑계를, 단 하나 기다리는 전화가 울리지 않음에 싱숭생숭해지면서 기다리지 않는 척 마음먹는다.

며칠 전 눈이 왔다. 아침인가 새벽인가는 조금 비현실적이고 아름다웠다.

갑자기 너무 쫓기듯이 살고 있다. 시작하면 생각한 것보다 힘들 거예요, 말을 들었지만 딱히 힘들다는 느낌, 육체적으로 힘들다기보단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내가 툭 던져진 느낌이 힘들다. 이제껏 해보지 않은, 해보더라도 숨을 구석이 있었던, 사람들을 조율하고 챙기고 결과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일도, 팀 작업이 익숙하지 않은 내게는 쉽지 않다. 그래도 소리라도 지르면서 대나무 숲으로 도망갈 생각은 없다. 뒤엉킨 실타래 같은, 따끔한 가시가 오밀조밀 박힌 나뭇가지들을 뚫고, 헤치고, 조금씩 나아가는 거다. 어떻게든 일은 진행이 되니까.

일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보다,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가 대단하다고,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은 주제에 느낀다.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180도 돌아선 듯한 느낌도 받는다. 막상 대화해보면 착각이었겠거니 싶을까.

오늘 TV에서 '스킨스' 3편을 봤다. 1분 정도 봤는데, 어떤 여자애의 영국 억양 목소리가 역겨워서 바로 채널 돌렸다. 영국 억양은 좋아하는데, 그 애의 목소리는 싫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위치는 바뀌고, 그 바뀐 위치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경험이 어색하고 신기하고 머쓱하다. 작업실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해본 적 없는데 이제는 필요에 의해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누구 같이 쓸 사람 없을까….

작년, 강의가 주된 일과일 때의 일주일과 지금의 일주일이, 이리도 다르다. 금요일이지만 요즘은 더 요일 감각이 없다. 나는 태양처럼, 내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면 좋겠지만 삶은 그것을 허용하질 않는다. 한 단계, 2007년의 회사(데일리 프로젝트) 일에 이어, 나는 한 단계 더 어른이 된다. 자의든, 타의든.

꽃샘추위가 풀렸다는데, 누구는 아직 이라는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따뜻한 건물 안에서 갑자기 춥고, 새벽에 한 시간을 걸어도 춥지 않고, 누구는 얼굴이 좋다고 하고 누구는 썩었다고 하고, 이 글조차도, 별로 기승전결 생각하지 않는 끼적거림이고. 24시간 중 널브러진 시간과 일하는 시간과 술 마시는 시간과 멍 때리는 시간 외에 온전히 나를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어서 만들고 싶다. 사실 할 수 있었겠지만 여러 생각이 머리로 가슴으로 침범한다. 조잘거리는 말과 정리해야 할 생각이 많을수록 나는 침묵의 편에 서고 싶다. 이리 말하면서 입은 쉴 투쟁을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마음만이라도.

Comments

  1. 누구는 얼굴이 좋다고 하고 누구는 썩었다고 하고,

    끼적거림이라 하셨지만, 공감가는글입니다.
    많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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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힘내세요! 충분히 멋지고 잘하고 있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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