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March 06, 2010

잠을 안 자는 버릇 하니 잠이 더 안 온다. 피곤하다고 침묵의 시위를 하는 눈 밑 다크서클(눈그늘)은 팬더 일보 직전인데도. 지난 일요일엔 강의를 했지. 다시 토요일이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종종 '내 인생에서 가장 빨랐던 한 주 혹은 한 달'을 느꼈지만, 이번 주가 최고 아닐까. 이런 속도로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생각보다 많다는 게 더 신기하지만.

목요일에 큰일을 하나 마치고 난 금요일, 많은 일을 했고 큰일이 있었다. 뜻이 맞지 않는 충돌. 점점 벌어져서 아물지도 못할 지경일 때보단 지금의 결정이 더 낫겠지. 그래도 아쉽고 섭섭하고 속상한 마음이 크다. 아마 서로 보는 시점과 생각이 달라서, 안 맞는다고 느낀 부분만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화가 난 부분도 다를 것이다. 그래도 머리는 하나인 게 맞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며느리의 고조 할머니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잘해볼 생각이다. 지우개로 지우고 퍼즐의 조각을 맞추고 그 사이 연필을 깎아 새 그림을 그려갈 것이다.

2년 전인가 한창 바쁠 때에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요즘도 그렇다. 필름 카메라는 아예 들고 다니지 않고, 내 애마인 루믹스 LX-2도 방치 상태. 이럴 때 빛을 발하는 건 '폰카'다. 휴대전화 카메라는 거의 안 쓰는 편이지만, 아이폰 카메라는 꽤 직관적이라 요즘 시대로 치면 저질 화질을 가졌지만 유용하다. 이 카메라로 생각날 때마다 하루 어느 순간을 20초씩 찍고 있다. 누구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는 건 결국 개인의 '만족감' 문제다.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한 쪽에서 잠시 다른 쪽에 발을 걸치니, 사람들이 '패션'에 대해 받아들이는 마음이 어떤지 더 잘 보인다. 아직도 원고 쓸 것은 두 개인가 세 개가 있다. 몇 건의 전화와 문자에 답하지 못한 것도 있다. 블로그에 일기 쓰는 것도 오랜만이다. 바쁜 것을 스스로 조종할 수 없을 때, 네이버에 며칠이나 들어가지 않았을 때, 어느 검색어가 1위인지 그날의 최고 뉴스가 무엇인지, 신문도 잡지도 모두 남의 일일 때, 나는 미개인이 된 것만 같다. TV에 나오는 신체가 불편한 외국인도, 성현이 형의 뉴욕 출국 기사도, 보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와 뉴스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 오히려 그 정보 흡수의 틈새가 주는 차이가 미묘한 쾌감을 준다.

생레몬을 갈아 만든 소주의 적당한 알코올은 피곤이 뒷골을 뻐근하게 당기는 와중에도, 쌓이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넘치고 흐르는 와중에도, 조금은 행복하다는 기분을 선사한다. 해결하지 못한 숙제 투성이지만, 지난 인생의 팔 할도 도전이었다. 부드럽게 강한 법을 생각한다. 휘둘리지 않는 뚝심을 생각한다. 글 쓰지 못한 나날을 생각하고, 도와주는 고마운 마음을 부탁할 때와 부탁하고 나서가 다르지 않도록 하고,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낭만이라 단어, 그 단어가 가진 뜻을 되뇌려고 한다. 발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익은 과실이 여무는 것처럼 마음의 어떤 부분이 여물기를 바란다. 지금의 쓴 경험들이 독이 아니라 꿀이 되기를, 언젠가 그렇게 느끼기를 바란다. 간밤에 잔 비가 내렸고 허리 디스크는 더 심해졌다. 그래도 누울 공간이 있다. 엄청나게 커다란 성공을 바란 적도 없다. 그저 나는 묵묵히 내 길을 갔고 그 길은 특별히 계획하지 않은 땅이었다. 그 길의 도중에 삶이 있었다.

Comments

  1. 우리지금 만나, 당장 만나서-생레몬을 갈아 만든 소주를 한잔씩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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