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 March 02, 2010

연휴가 낀 주말 혹은 주말이 낀 연휴. 눈 감았다 뜨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화요일이지만 어차피 출근하는 직장이 없는 내게, 휴일이든 아니든 별 상관은 없다. 문제는 요즘의 내가 휴일이든 아니든 '일'과 '여가'의 구분이 불분명하다는 거지.

오늘은 영화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다. 영화를 일 년에 수십 편씩 극장에서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것도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예술 영화들 말이다.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아마, 당시의 내가 내가 아니었던 건 아닐까? 사람이 변한다는 증거일까 그저.

일요일에는 강의를 했다. 패션에 대한 것은 아니고 '하루의 글방'이라는 제목으로 나, 이석원 씨, 정신 씨 그리고 이로 씨가 종일 2시간씩 맡아 하는 강의였다. 내가 첫 주자였고, 오전 11시부터 했다. 글과 글쓰기를 주제로 한 강의는 처음이었다. 이로 씨에게, 왜 나를 초빙하셨느냐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재미있었다. 열다섯 명의 학생들도 충실했다. 무엇이든 반복을 하면, 요령과 실력, 둘 다 늘어난다.

<1q84>는 아직도 다섯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자기 전에 무얼 먹는 버릇은 나쁘지만, 식생활이 규칙적인 게 어째서 여행 갔을 때만 인가. 고쳐야 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 문제다. 요즘 자주 쓰는 두 개의 모자는 두 개 합쳐 만 원 정도에 샀다. 기름 먹인 면 소재로 된 딱딱하고 챙이 짧은 야구 모자 스타일이다. 진한 갈색과 감색인데, 퍽 마음에 들어 애용한다. 그제 에이랜드에 갔다가 캉골의 챙 짧은 회색 모자를 봤지만, 작년에 잃어버린 검정 모자가 생각나 가격도 보지 않고 제자리에 돌려놨다. 에이랜드 앞은 뭐랄까, 젊다기보단 어려보이는 친구들 천지였는데, 아마 어린 날의 나도 그들과 비슷했을까?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단, 패션 코스프레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외국 어느 도시에서 멋진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보고 느낀 '멋지다'는 감상이 그들에게 떠오르지 않는다. 자연스러움, 그들에게 결핍된 것은 멋에 응당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다. 어떤 부분들은 무척 과잉이고, 남들과 다른 듯 보이지만 또 다른 규칙에 얽매여 있다.

일기를 쓰는 시간은 내 안에 있는 감정 중 꽤 많은 것을 덜어내고서, 그러니까 자기 전이라든가, 생각할 것들을 일단 한편으로 밀어낸 다음이라든가, 아무튼 머리가 멍할 때 주로 쓰게 된다. 물론 생각이 넘쳐 흘러 폭발하기 직전에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다. 못 읽은 책들, 정리할 게 산더미인 책상, 굴러다니는 휴대용 화장품 용기, 녹음기, 어느 클럽의 카드, 다 찍은 필름, 프레젠테이션의 초대장과 장갑과 종잇조각들이 떠다닌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만일 내 방이 무중력 상태라면, 아마 물건들로 가득 차 내가 웅크릴 요만큼의 공간도 없어질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중력이 존재하는 것은 꽤 고마운 일이다.

일의 진행은 더디지만 조금씩 발전한다고 믿어야지. 오늘 또 원고를 하나 넘겼다. 이번 주에 하나 더, 다음 주에 하나, 한 주에 하나씩은 써야 한다. 새로 시작하는 일로 인해 조금 줄이자고 마음먹으면서도 막상 그리되진 않는다. 왜냐면 불안하니까. 일에 치여 조금씩 고갈되는 자신을 느끼면서도, 그 일에서 벗어나면 느끼는 소외감을 조절할 단계는 아직 아닌 것이다. 언젠가 어른과 술 마셨을 때, 들었던 질책 혹은 충고. 너무 소모하지 말라는. 그 말, 수긍하면서도 아직 그 정도의 여유를 갖추진 못했다. 어쩌면, 당분간은 이 상태가 지속될 것만 같다.

나는 사실 새로운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이 어느 정도 괴롭다. 누군가 나 대신 처음의 몇 마디를 해주었으면 할 때도 잦다. 그러나 안다. 누구도 해주지 않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란 것을. 아침에 온 전화를 받지 않았더니, 밤에 한 귀를 흘러 온 피드백; 그렇게 전화 안 받는 실장님들은 처음 봤어요. 아, 어쩌라고. 다음부턴 잘 받아야지. 하고 다시 나는, 독백과 머릿속으로만 하는 고민을 뒤로하고 다시 아침을 살 것이다. 그게 남은 사람들의 고민이자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는 말의 현실형이다.

며칠 전 누군가 자신이 누구의 친구라고 했다. 그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했을 때였다면, 친구의 친구라는 게 반가웠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말과 글, 그림, 심지어 직접 만나고서도 사람은 모를 때가 생긴다. 내가 알던 어느 모습, 어느 시간을 와르르 부정하게 되는 때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때 조금 우스울 정도로 쉽게 찾아온다. 때로는.

Comments

  1. 자연스러움.
    아직 우리나라 젊은이들 패션에선 찾기 힘들지 않을까요. 유니크 하기만 했었던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카피하면서 대중화 되다보니, 이렇게 저렇게 입으면 우리모두 fashionista! 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하니까... 자연스럽고, 자기한테 어울리는 스타일 찾는 / 아는 사람은 서울에 과연 몇명이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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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멋진사람은 멀입어도 멋있고
    찌질한 사람은 멀입어도 찌질하고
    그게 진리인거 같아요

    패션의 완성은 인간
    그자체,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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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신씨의 글을 참 좋아하는데,
    강의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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