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June 27, 2010

2010년 들어 거의 모든 일기 제목을 '1006….' 식으로 하는데, 처음에는 마땅한 제목이 없어 시작했지만 그러다 보니 계속 그러게 된다. 뭐 누가 압박하는 것도 강요하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어느 새벽 혼자 일기를 훑어보는데, 그렇게 좋은 건 아니구나 깨달았다. 제목만 봐선, 무슨 일기인지 알 수가 없어. 굳이 클릭을 한 번 더 해야 했다.

어제의 축구는, 많은 언론과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였다. 아쉬웠고, 패했지만, 잘 싸웠고, 그렇게 미련이 남지 않았다. 사실 이번 월드컵은 남의 일 같았다. 함께 응원하는 문화에 감흥이 생기질 않았다. 어쩌면 내겐 2002년 16강 이후 월드컵 응원은 끝났다. 일 자체가 무척 힘들 때였고, 개인적으로도 힘들 때였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무언가를 구축하는 데 있어 뭐랄까. '실패'라는 단어가 머리를 맴 돈, 굉장히 오랜만의 경험을 할 때였다. 그래서 국가대사라는 월드컵이 남의 일 같았고, 사실 어제 경기도 나는 처음엔 여뎗 시 반, 나중에는 열한 시 반인 줄 알았다. 열한 시더군. 응원은 열심히 했다만.

비가 와서 가져나간 우비를 입었는데 역시 일기예보는 믿지 말아야 할까. 세차게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면 그래도 다음에도 우산 대신 우비를 입어보겠다. 만족스러울 만큼, 우비를 입지 못했다. 오 분 남짓 입었다. 집에서 잠자는 것 빼곤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던 수개월이었기에, 요즘 들어 방 정리를 시작했다. 문제는 정리를 해도 해도 한 티가 안 난다는 것이지만. 산 책들을 죽 쌓아놨다. 내 방에 필요한 건 책장이다. 알고 있다. 어쩜 그리도 안 살까. 문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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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볼까.

작은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 근래에는 큰 영화관에서 블록버스터밖에 보지 않아서. 영화만큼은 현실을 잊게 해 줄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다. 지나가며 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온 양익준 감독을 보고, 개봉했을 때 보지 못한 '똥파리'를 보고 싶었는데. '주성치의 서유기 1, 2'도 극장에 걸린 마당에, 혹시나 '똥파리'를 재개봉하거나 하진 않는구나. 그래도 영화가 무엇이든, 혼자서 보든 누구랑 보든, 영화를 보고 싶다. 영화관에서.

국토 대장정까진 아니지만 도보여행으로 어디까지든 가보기. 일 때문에 속초와 정동진에 다녀오긴 했지만 짐 한가득 싣고 잠 못 자고 폐인처럼 다녀온 빠듯한 일정이어서 놀러 간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당연히. 여유로운 휴식을 원하는 건 아니다. 다만 빌딩 좀 없고 공사 소음도 없고 더불어 사람도 별로 없는 그런 곳에서 생각하고 싶다. 펜 하나 노트 하나 편한 신발 카메라 손수건 혹은 타월 그리고 갈아입을 옷가지와 몇몇 상비약들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대학 초년생도 아닌데 이런 여행이 떠오르는 건 그만큼 머리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셈일까. 땀이라도 흠뻑 흘리고 다시 시작할 무언가를 얻고 싶다. 걷기, 혹은 생각이 그걸 도와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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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에는 많은 이름이 있다. 일 때문에 저장한 이름들 주욱. 친구들. 그리고 지운 번호까지. 그런 와중에 나는 가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한다.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멀어진 사람 등 일 때문에 저장하지 않은 여러 사람이 있지만, 누군가와 다시 가까워지는 것에 나는 한 발 띄고 바라보는 걸까. 사람을 대할 때 어느 정도의 선을 여전히 긋는 나는, 실수하거나 경솔한 짓을 하곤 또 후회하거나 하니까.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있지만 진정 가까운 사람이 없는 공허함을 요즘 느낀다. 뭐, 꽤 된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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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H2'를 읽고 또 읽는 버릇. 읽다 만 소설들은 어디에? '1Q84'는 장정판(하드커버)이 아닌 문고판이 있으면 좋겠다. 아니 모든 책이 그랬으면, 그리고 가벼웠으면. 돌아오는 주는 '쉬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경험상 쉬는 게 쉬는 건 아니지. 그리고 무엇에 골몰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좋은 사람과 좋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그게 좀 어렵다. 굳이 문제가 있다면 아마도 내 쪽에. 해가 좀 더 떴고 비는 그쳤나. 비 그치는 건 좋지만 선선한 바람은 그대로 남았으면. 사은품으로 받은 백화점 상품권과, 편집매장의 상품권과, 예전에 참여한 프로젝트의 수고비 정도로 받은 절대로 쓰지 않을 브랜드의 상품권과, 맥도날드 빅 불고기버거 무료 교환권이 이 컴퓨터 아래 있다. 기분 전환을 위해 영화를 보고, 작은 쇼핑을 하고, 그러다 지난 주 프로젝트의 뒤풀이를 위해 홍대로 갈까. '디트로이트 메탈시티' 8권이 드디어 나왔던데, 만화책을 살까. 아니 아니, 그러나 밀린 임금도 내야 하고 다시 일해야 하는 내가 오면 골칫거리 스트레스들이 나를 누르겠구나. 일을 같이한 사람들과 좋지 않게 헤어지는 것은 어른 중에서도 꼰대 같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이라는 변명으로 나도 조금은 그랬다. 반대로 그들이 보기엔 조금이 아닌지도 모르고. 사실, 별로 상관은 없는 얘기지만,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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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립워커 SLWK. 쇼룸에 모자를 두고 왔다. 찾아야 한다. 유니클로의 면 티셔츠는 촉감이 좋다는 걸 알았다. 패트릭 에르벨의 재킷을 입고 싶다. 요즘 흥미로운 디자이너는, 그러니까 정말 사고 싶은 디자이너는 외국엔 없다. 하이패션보다 로컬 패션에 관심이 많다. 마드라스 체크의 바지, 주머니가 흥미롭게 달린 잘 만든 조끼, 괜찮은 핏의 티셔츠를 갖고 싶다. 우울한 정서를 어서 벗어나고 싶다.

Comments

  1. 이시대 20대 후반이라면 느끼는 기분이 아닐까여?
    특히 'normal'과 먼 사람이라면?
    여행그리해봐도 몸을 멈추면 머리는 어느세 다시 버리고각곳으로 가더라고여?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면 왜 떠낫는지 가물가물하고, 떠낫던기분 금세 잊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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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못보셨다면 일본영화'안경'을, 보셨다해도 일본영화 '안경'을 추천해드립니다. 절대 보시기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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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Kyungji/ 음, 모두가 비슷하다면 조금 위안이 될지 모르겠어요.

    Anonymous/ '안경'을 만든 감독의 요리 영화 있죠. 그거, 보다가 약간 반감이 생겼었거든요. 안경 괜찮을까. '절대'라고 하시니, 어디선가 맞닥드리게 되면 보겠습니다.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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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핸드폰,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접속할때마다 늘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다들 그러는 건가봐요 :)
    그렇게 공허하게 살아가는건지도.

    큰아이였던, 작은아이였던
    아이로 살던 때로 돌아가고싶은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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