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cents

지난주는 한 마디로 '노는' 주였는데, 쇼핑도 조금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랬다. 상반기에 일에 치여 생각에 치여 애정 문제와 삶에 치여, 보지 않고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난다. 가끔 그런 만남이, 소통 같지만 결국 소통하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지만, 대화는 어쨌든 필요하다. 살아가기 위해서.

100721 wed

약수동 애틱 ATTIC from S.T.A.d. 사무실 방문. 웹에선 공개할 수 없는 비밀 프로젝트를 위해 빌렸던 옷을 뒤늦게 반납. 애틱 사무실의 세 명은 여전했다. 술 한 번 마셔야죠, 했는데 요샌 술이 좀 힘들다. 나이 탓일까. UFO와 심령사진 얘길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배웅을 받고 약수역으로 나왔다. 금호역 가는 택시를 탔다. 이틀에 걸치는 엠비오 MVIO 캠페인 광고 첫 날 촬영을 마치고 집에서 쉬던 한상혁 실장님과 오랜만에 독대하기로 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사동이니 압구정동이니 하는 곳엘 가진 않는다. 주로 동네에서 본다. 데일리 프로젝트 다닐 때는 주로 금호동 족발집에서 소주를 마셨지만, 한남동까지 빙빙 돌다 아직 해도 떨어지지 않은 시간 덕에, 사람들 바글거리는 고깃집에 안착했다. 소고기, 맥주, 소주 몇 잔, 펼쳐진 얘기들.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남산 공원 근처에 차를 대고 남자 둘의 공원 산책. 작년 우리가 만나 작당(?)한 것은 농사 관련 일이었는데, 서로 바빠 흐지부지됐지. 현실적인 문제들은 산적했지만 그에게도 나에게도 하고 싶은 건 많고, 다행히 아직 시간도 많다. 이번 가을/겨울 시즌 '마운티니어링' 컬렉션에 관해서 한 번 인터뷰할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큐 코리아 온라인 리포터 시절 이후, 공식적으로 그와 인터뷰한 적은 없다. 아참. 내가 백스테이지 사진을 찍고 루시드폴과 디제이 은천이 음악을 만든 엠비오의 새 컬렉션 북이 나왔다. 얼른 보고 싶다.

100722 thu

f(x) 일로 빌렸던 옷을 갖다 주러 성은 씨(al,thing)를 만났다. 둘 다 가까운 대학로가 약속 장소. 그녀의 추천으로 학림다방에 갔다. 처음 가봤는데, 오래된 소파와 고목으로 된 테이블과 드나드는 사람들의 다양한 연령대가 좋았다. 대학교 동창회 명부가 책장에 꽂힌, 의외로 화장실도 쳥결한 이 카페는 대학로에 오게 될 때 다른 체인점 커피숍 대신 갈 것 같다, 앞으로. 성희씨는 요즘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있어서, 하고 싶은 일이 없다 했다. 그 말은 자신감이라든가 오만한 무언가가 아니라, 자기에의 만족 비슷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힘드니까. 나 포함해서. 얼마 전 독립영화 의상 관련 일을 했다는 그녀는, 얼굴이 맑아 보였다. 웃는 상이신 것 같아요, 라는 좀처럼 듣지 못하는 과찬도 들었다. 자신의 레이블을 준비하는 그녀의 친구도 합류해서 얘기를 나누다가, 만나기로 한 다원이가 와서 다방을 나섰다. 학림다방의 창가 자리에 다음에 앉아야지.

다원이와 술자리는 실로 오랜만. 둘이 마신 건 더더욱. 한 2년 넘었을까. 1년은 확실히 넘었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근황. 패션 일을 하지만 예술 일도 하고 싶은 다원이는 어떤 등단을 준비 중이라 했다. 나는 다원이의 글을 유심히 읽은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걸 준비하고 그걸 열성적으로 말하는 모습에서, 처음 다원이를 만난 시절 이후 어느 정도 서려 있던 아스라한 독기가 서서히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어느 시절, 우린 연락도 안 하게 되고 멀어졌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라 일터에서의 그녀에겐 다가가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기에. 털어내고 이야기하고 앞날과 불만과 희망을 말하는 것, 꽤 괜찮은 방법이다. 네 말대로 만날 보는 친구들이 아닌, 나 같은 사람에게 말이지. 그녀가 도슨트로 참여할 예정인 양혜규의 새로운 전시, 8월에 가야지.

그러다 늦은 시간 합류한 사람이 크래커 Cracker your wardrobe의 장석종 편집장. 석종이를 처음 만날 날은 묘하게 선명하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2007년 9월, 아직 잡지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스트리트 패션 잡지를 만들고 있다며, 데일리 프로젝트에 비치할 수 있는지 물으로 온 둥글고 커다란 눈동자를 가진, 잔뜩 풀어헤친 머리의 마른 소년. 비 때문에 밤처럼 보이던 저녁 혹은 오후. 그래요 그러시라며, 그리고 나온 첫 호 이후 크래커는 한 마디로 질주하고 있다. 그렇게 고민하던 유가지 전환은 성공적이었고, 잡지 일 외의 컨설팅이라든가 광고 일도 한다. 스트리트 패션을 메인스트림 패션의 관심권에 넣은 일등공신이 크래커이고, 그 성공의 몇 할은 장석종의 차지일 것이다. 석종이와는 별로 일 얘길 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작년에 함께 한 프로젝트는 재밌었지. K.Swiss와도 뭘 한다고. 그래 나도 할게. 프리마켓? 팔 것 많아 그래 참여할게. 그리고 이어진 연애 얘기 약간. 누가 누구에게 훈수를, 조언을, 참으로 하는지. 그 정도 이해심이 있었다면 나도 잘했겠다 참. 듣는 것과 들은 것에 대한 쏟아냄의 밤과 새벽, 약간 허무했다. 3차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역시 무리. 다행히 다음날 숙취는 없었다. 손수건은 처음 간 꼼장어 집에 두고 왔다. 올여름 두 개째 분실.

100723 fri

1년에 한 번은 보는, 지민 씨를 만났다. 늦어서 택시 타고 나섰고 여느 때처럼 '터틀'에서 봤다. 아이스커피 쪽쪽 빨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뺨을 찌른다. 돌아보니 승래 형. 친구와 식사하러 온 듯. 우린 다시 요즘 얘길 한다. 7월에는 스타일리스트 일 인수인계를 하고 초반에 원고 몇 개를 쓰고, 그리고 사람들 만나고 놀고 있어요. 쉬고 있어요. 그녀는 런던 얘기를 한다. 자기 문제도 얘길 한다. 그 문제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많거든. 아직 해결하지도 못했고. 들어오기 전 일본에 들렀다고 했다. 1주일 정도. 일본 가고 싶다. 성수기 끝나면, 한 번.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었나. 아이쇼핑을 하기로 한다. 일모 아울렛에 갔다가, 그렇게나 가방에 꾸역꾸역 넣고 다니던 내가 요즘은 탈 가방 주의에 심취했기에, 수년간 쓰던 디올 옴므 지갑 대신 얇고 작은 꼼 데 갸르송의 물방울 무늬 가죽 지갑이 끌렸다. 반값 할인. 충동적으로 샀다. 벨엔누보 Bell&Nouveau와 죠니헤잇재즈 Johnny Hates Jazz 방문. 벨엔누보가 만드는 잡지 <오마주 OMAJU>와, 치열하게 바쁜 죠니헤잇재즈의 파리, 뉴욕, 서울 일정에 관한 몇 가지 대화를 나눈다. 노케제이 Nohke.J 쇼룸과 이사한 레이 Leigh 쇼룸도 방문. 레이 쇼룸 이전 파티 겸 샘플 세일 하는 날이었지만 너무 일찍 방문해서 아직 준비 중. 항상 우연히 마주치는 아디다스 팀과 조우. 레이에선 멋들어진 지난 가을/겨울 시즌의 남색 재킷을 샀다. 가죽 파이핑과 트렌치코트 디테일이 마음에 든다. 가을 되면 자주 입을 거다 분명히. 한창 여름인데, 자꾸 가을옷만 산다. 지민 씨와 헤어지고, 애딕티드로 슬슬 걸어갔다. 오픈 기념의 소소한 파티는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밀렸다. 새 공간 사진을 찍었다. 같이 갈까 연락한 성은이는 집에 곧장 가야 한다며. 애딕티드 준호 형(디렉터이자 치프 바이어)이 야심 차게 준비한, 새로 생긴 북 섹션에서 스타일리스트 토모키 스케자네 Tomoki Sukezane가 편집장 겸 사진가로 활약하는 잡지 를 오랜만에 보다. 이 잡지에서 토모키는 그의 요즘 스타일링 작업처럼 스타일링은 물론 사진도 찍고, 디자이너들의 인터뷰와 컬렉션에 대한 개인적인 리뷰 및 일기도 함께 보여준다. 거의 원맨쇼 수준인데, 꽤 볼만하다는 것. 어떻게 그걸 다하지? 싶었는데, 찬찬히 보니 답이 나오네.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서 아예 컬렉션 시즌 파리에서 열리는 브랜드들의 쇼룸에서, 최신 컬렉션의 옷을 바로 협찬받아 진행하는 것이다. 이름 없는 잡지라든가 인물이라면 꿈도 못 꾸겠지만, 이런 포맷, 꽤 신선하고 재밌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으려나.

다시 레이에 들러 몇 명과 얘길 나누고, 약속에 조금 늦게 이태원으로 출발. 성현 형과 오랜만에 보기로 했다. 일산 집에 갔다 오는 길이라는 형이 막히는 서울 길을 달린 나보다 일찍 도착했다. 수염 자르고 머리 자르니 몇 년은 회춘한 형. 커피 깨작거리고 툭툭 던지듯 몇 마디 나누다, 바비큐 파티 중이라는 약수동 엘에스디 LSD 사무실에 갔다. 처음 가봤는데, 빌딩을 아예 통으로 쓴다는 게 놀라웠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아는 얼굴 몇 명을 봤다. 내 강의 들었던 배여리 씨. 프레젠테이션 초대해줬는데 정신없어서 못 갔던, 아쉬운 마음에 메일도 썼던 계한희 씨. 데이즈드엔컨퓨즈드를 그만두고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지민 씨. 사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천연덕스럽게 끼어들지 못하는 나와 성현이 형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맥주만 흡수하고 나왔다. 바비큐는 엄청났지만 말이야. 픽스드 기어, 그러니까 픽시 바이크를 타진 않지만, 수년 전 생긴 새로운 씬이 지금 어떻게 굴러가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밥 먹으러 한 번 가기로 했다.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밤의 신사동은 뜨겁고 미적지근한 낮보다 한산했다. 금요일이라, 아직 사람들은 많았지만 인산인해 수준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닭튀김을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 시키고, 닭에 환장한 남자 둘은 하이파이브를 날렸지만 어설프게 튀긴 닭튀김은 씹는 질감조차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해 씨가 동료와 자리에 합류했다. 소주는 안 마시기로 한 날인데다 성현이 형도 맥주만 홀짝홀짝 들이켜는 정도라서, 얘기만 했다. 동료는 피곤하다며 금새 갔다. 집에 있을 때 본 티브이에서 '남자의 자격'이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괜찮구나 싶었는데 거기 합창단에 합격했다지. 어차피 동갑이라 말 놓기로 했다. 그런데, 예전 술자리(도 아니었다 사실)에서 내가 잠들었을 때 있던, 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아악 쪽팔려, 라는 기분도 들었다. 웃겼지 뭐. 당차 보이고 손톱을 넘어 손가락 한 마디까지 봉숭아 물 들인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신사동 어느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다 마시지도 않은 술자리는 새벽녘에 끝났다. 택시를 타고 집에 오니 졸음이 쏟아졌고 요즘 타는 택시마다 아마추어 기사들의 저주에 걸려서인지, 분명히 내부순환 타고 정릉 쪽으로 빠져서 길음동 가자고 했는데 기사는 장안동엘 갔다. 이봐요. 7월에만 몇 번이고 있던 일이라, 화내고 싶지 않았는데 화났다. 그는 택시비를 받지 않았고 나는 굳이 토를 달거나 찔리는 마음에 돈을 주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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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의 반은, 남들 고민을 많이 들었다. 남의 고민을 듣고 조언할 입장은 아닌데, 몇 번인가 했다. 가면을 쓰는 정도는 아니지만 쓴 것처럼 평온하게 말할 때가 있다. 긴 일기를 쓰니 입이 좀 마르네. 오늘 저녁에는 국내 벤처기업이 만든 타블렛 PC의 런칭 행사에 간다. 이번 주는 약속으로 채울 것이고, '나의 노는 7월'은 '일할 준비의 8월'과 맞물릴 것이다. 주위 모두가 간다는 지산은, 갈까 말까 여전히 생각 중이다.

Comments

  1. 항상 다이어리 읽으면서 생각하지만 님은 휴머니즘 덩어리 ㅋㅋ. 정말 공감가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한국이 그립게 만드는 사진들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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