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 September 07, 2010 _ 가을이 오는 것을 확신한다

오전과 오후의 경계쯤 집을 나설 때, 간만에 햇볕이 따가웠다. 카랑카랑한 하늘은 태풍 뉴스가 있음에도 가을이 도래함을 알린다. 된장의 남자처럼 좋아하는 카페에 와서, 컴퓨터를 켜고 일하다, 몇 개의 블로그를 구경한다. 내 블로그를 포함해서. 창가 바로 옆 자리인데 일 층이고 에어컨이 선선해서 바깥과 안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고 지나는 사람 중 일부와 눈이 마주친다. 대광 초등학교의 노란 통학버스가 지나갔다. 이름 모를, 어린아이 키 정도 될 나무들의 퍼런 잎이 햇빛에 투과되어 노란 빛으로 흔들린다.

이번 주에는 일이 많다. 만일 지난주에 좀 '덜 뒹굴'거렸다면, 더 수월했겠지. 각기 다른 길이의 원고를 여섯에서 일곱 개의 잡지에 넘길 것이다. 매체에 글을 쓸 때는 정해진 마감이 있기 때문에 항상 비슷한 사이클로 바쁜데, 이번 주에는 왠지 여기저기서 의뢰가 들어와 쓸 게 많다. 보그 코리아 VOGUE Korea의 패션 나잇 아웃 Fashion's Night Out 초대장을 받아서 갈 생각이고, 그 사이에는 간만에 인터뷰에 기반을 둔 글 쓰는 작업들이 있다. 올해 안에는 해결해야 할 계약 건도 있고, 예전 직업(바이어)을 살려서 새로 시작할 컨설팅 비스름한 일에 대한 협의도 있고…. 마치 일 중독자처럼 보인다. 가끔 가슴이 답답한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때문일까. 이럴 때는 머릿속에 지우개를 하나 만든다. 노트와 펜도 함께. 그리고 하나씩 해나간 일을 지우는 거다. 일과 일의 틈에는 흘리는 땀과, 만남과, 소소한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가령, 오래전 개봉한 보지 못했던 영화를 밤에 본다든가 하는.

이 짧은 일기를 쓰는 동안 옆 테이블에는 미시족(族) 같은 여성 둘이 앉았다. 팥빙수를 먹는다. 팥빙수는 좋아하는데 사실 팥을 좋아하진 않는다. 팥 대신, 곱게 간 얼음과 연유와 아주 약간의 아이스크림만 있어도 좋겠다. 어느 분식집에선 라볶이를 시킬 때, 미리 떡 빼달라고 하면 라면을 더 준다는데. 팥빙수도 팥 빼고 얼음과 연유를 더 주면 어떨까.

아기자기한 일본 영화를 몸서리치게 좋아하진 않는다. 그네들의 '보이지 않는 속'을 신봉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아기자기함 속에 담긴, 도시에서 랩탑으로 영화를 보며 휴식에 대해 침 질질 흘리게 하는, 그 공간감을 좋아한다. 일을 더 하고, 돈을 더 벌고, 더 많은 스트레스가 엄습하고, 실패를 하고, 좌절과 헤어짐과 마음의 아픔을 다시 경험하고 나면, 그러니까 지금보다 열 살에서 스무 살은 더 살게 되면 이상적인 은퇴를 할 수 있을까. 꼬리 문 대화에서 거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은퇴 생각을 하기에 오늘 할 일과 길가에 차가 너무 많지만.

쿡, 하고 쑤신 것처럼 답답한 부분이 왼 가슴 언저리 어딘가 있는데 그 정도의 부담이 싫지 않다. 다시 본 창 밖의 바람도 좋아 보인다. 날은 덥고 손수건은 여전히 가지고 다니지만, 가을이 오는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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