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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적고 싶었다 _ tue, March 11, 2014

아침부터 정신없이 일했어야 하지만, 편의점 컵라면과 주먹밥, 우유로 대강 점심을 때우고는 일과 상관없는 활동에만 열중했다. 평소처럼 뉴스만 본 건 아니었다. 불현듯 모르게 유희열의 토이 Toy 작업들이 궁금했다. 무언가 정보를 얻고자 할 때 나름대로 신뢰하는 엔하위키 미러(아는 사람들은 아는, 아주 위험한 중독성을 지닌 위키 사이트)에 들러 유희열에 관한 글을 읽고 링크를 섭렵했다. 음반 내력을 보다가 몇몇 잊고 지내던 곡을 듣고, 이제 '옛날 서울'로 느껴지는 오래된 극장 매표소 앞에 선, 요즘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퀭하고 청초(?)한 유희열이 표지를 장식한 <나이트 인 서울 Night in Seoul> 음반 사진을 보고, 그러다 이승환의 '변해가는 그대'를 듣고, 다시 흘러 윤상을 찾았다.

윤상. 사실 윤상과 토이의 앨범들이 전성기를 누렸던 1990년대 중후반 온전히 그 음악들이 활약하던 시절, 나는 너무 어렸고 찾아 듣게 된 것은 이십 대 이후, 그러니까 2000년대 이후였다. 오랜만에 들은 이승환 4집 - '변해가는 그대'는 감명 깊을 정도였다 - 과 유희열이 토이라는 이름에 숨어 있던 시절 노래를 들으니, 그 시절 고등학생 혹은 대학 시절을 보내며 실제 그들과 비슷한 연배로 나이 먹어온 이들이 1990년대의 대중문화와 음악을 누린 축복받은 세대라는 (당연한) 생각에 다다랐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벌어진 십 년이 내 이십 대를 관통한 것처럼 그때는 사뭇 달랐다. 지금과 만만찮게 격동했던 구십 년대 서울은 나고 자란 곳이긴 했지만, 사실 잘 모르는 시공간이기도 했다.

종종 무언가 만드는 사람들에게 질투 아닌 질투, 열등감 아닌 열등감, 동경 아닌 동경을 느낀 적이 있노라고 언젠가 쓴 적 있다. 몰두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이 (다수이든 소수이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 원동력을 밑천 삼아 새로운 창작을 이어간다. 사실 누구든지 이러한 행동은 할 테고, 각각의 분야와 사람들의 관심 정도가 다른 것일 테다. 지금 하는 몇 가지 일 또한 누군가에게는 관찰이나 기록일 뿐이고, 누군가에게는 창작의 하나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다. 어제 꽤 오랜만에 만난 이는 내 이십 대의 절친한 친구로, 지금은 결혼했고 여전히 자신의 직업 안에서, 혹은 직업을 넘어서 무언가 하고자 하는 친구다. 그가 얼마 전 우연한 자리에서 알게 된 다른 친구는 동갑내기였는데,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여러 의미에서) 최고 아이돌 그룹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친구와 동갑내기라는 그가 엔터테인먼트라는 특수한 시장에서 어떻게 돈을 만들고 버는 지 한 다리 건너 듣고 있자니, 역시 이 분야는 참 별세계 같다고 생각했다. 엔터테인먼트, 패션, 세계 그리고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온갖 커다란 규모의 일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무언가 우리도 해보자, 마음먹었지만 고백하자면 지금 기를 쓰고 집중하는 일들이 조금 하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런 삶을, 저런 세상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대면하면 숙연해진다거나 벅차오른다는 기분과는 다른 감정으로 위축되는 면도 조금은 발생하는, 그런 어른이었다. 나는.

지난해 어느 대기업과 일한 적이 있다. 그곳의 수많은 부사장 중 한 명에게 직접 보고하는 리포트였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고 들었다. 일을 위한 첫 미팅 때도 그들에게 얘기했지만, 전적으로 맡아본 분야는 아니었다. 어느 믿음, 신뢰, 노력, 밤샘과 약간의 건강 악화 같은 것이 모여 어렵게 마쳤기에 후에 친구의 멕시코 결혼식에 가는 경유지였던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받은 좋은 반응의 메시지가 조용히 마음을 뒤흔들기도 했다. 실제로 어떠한 점진적인 영향이 단 하나의 리포트로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그 회사에 끼쳤으면 하는 바람이 빛을 본 순간처럼 느껴졌으니까. 회사의 담당자와는 이후 몇 차례 만나서 저녁 먹고 이야기 나눴다. 그는 나보다 얼추 십 년 정도 더 살았고,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도 (물론) 다른 회사에서 몇 년간 일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다니는 그는 지금 준비하는 프로젝트로 '3월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3월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편집장을 맡은 <스펙트럼 spectrum> 전면 새 단장이라는 핑계(?)로 손과 정성이 더 타는 작업을 하는 중이고, 엉뚱하게도 (물밑에서 추진 중인) 요식업 브랜딩 관련 일도 맡은 데다 매주 너무 빠르게 다가오는 스타일닷컴 Style.com 마감도 밀려 있다(지난주에 보냈어야 했는데 - 담당자 크리스틴 Kristin에 게는 미안하지만 - 오늘은 꼭 보내야겠다). 그는 회사 내부의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생각보다 더 정글의 법칙이 서슬 퍼렜다. 밀림의 먹이 사슬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몇 가지의 실없는 얘기와 건설적인 일화 끝에 다다른 사소한 얘기들 사이, 지나가는 말로 던진 한 마디가 인상 깊었다. 회사가 주는 돈이 마약 같다고. 앞으로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지금 무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도. 그렇지 않아 보이는데요, 맞장구쳤지만 어느 시스템 안에 들어가서 그 안에 빠지게 되면 하루와 일 년이 지나는 것은 순식간이니까. 모두 그걸 알고, 살고 있으니까.

요새 일주일이 참 빨리 지난다. 사람들과 혹은 스스로 무언가 더 재밌는 것을, 더 틀을 다져서, 해보자고 마음먹는다. 몇 가지 그러한 일도 벌이고 있다(이번 서울패션위크 Seoul Fashion Week의 '오프 스케줄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고 계획 중이다). 다만 어떤 때에는 한없이 두근거리다가도 어떤 때에는 나락에 떨어진 것처럼 풀이 죽는다. 예전, 나의 진정한 사춘기가 도래했다고 느꼈던 이십 대 중후반 시절만큼 감정 기복이 크진 않지만, 어떤 작업들에, 어떤 만남과 어떤 대화 속에서 한없이 끓어올랐다가도 어느 날은 무턱대고 잠을 자거나 많은 것을 잊고 싶어진다. 어쩐지, 그런 어른이 되었다.

어제 잡지를 한 권 샀다. <포파이 POPEYE>가 새로 나왔나 들른 서점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 Vivienne Westwood 여사가 표지를 장식한 <젠틀우먼 The Gentlewoman>. 포장도 뜯지 않고 지금 내 옆 가방 속에 있다. 오후에 할 일들을 대강 마치면, 이 잡지를 보며 감탄을 연발할 것이다. 그러고 다시 생각하겠지. '맞아, 이런 걸 해야 해.' 그러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고' 할 것이다. 사람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말, 흔한 판박이 표현 같지만 맞는 말이다.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닌데도, 여전히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겠는 걸, 한다.

토이의 '내가 남자친구라면'과 이승환의 '변해가는 그대'를 들으니 그 노래를 듣던 어느 순간이 향수처럼 다가왔다. 어렴풋한 감각만 남았고 거창하게 과거 어딘가로 데려가는 것은 아니다. 밤과 새벽의 라디오를 듣는 것과 녹음테이프에 열을 올렸던 시절이었다.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감각을 기억해냈다. 아니, 기억나버렸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일기, 끄적임을 마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같은 컴퓨터의 같은 키보드로 다른 것들을 한다. 그냥 적고 싶었다. 이렇게 길게는 아니었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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