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o-controlled car _ sat, May 03, 2014

저녁에 (지하철 사고 소식을 보고도 잘도)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잠깐 들렀다. 무인양품과 유니클로 매장을 둘러보고 바지를 하나 입어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인파가 많은 서울역을 오랜만에 봤다. 명절 귀경길 정도는 아니겠지만, 역으로 바로 오르는 길목 에스컬레이터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에스컬레이터이니 대체로 그렇긴 하지마는). 

롯데 그룹이 점령한 서울역 상업 공간 앞 계단 옆 흡연구역에서 잠시 담배를 태웠다. 나만 혼자였고 대체로 삼삼오오 모여서 연기를 뿜는데, 얼핏 계단 중간에 딱 봐도 '훈남'처럼 보이는, 뿔테 안경을 쓰고 줄무늬 긴소매 티셔츠와 기다란 청바지를 입고 깔끔한 가죽 구두를 신은 대학생 정도의 남자가 무릎을 오므리고 앉아서 어느 아저씨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밀착해서 앉은 둘 사이에는 '무선조종 자동차(RC카)'가 있었다. 기다랗게 치솟은 안테나가 달린 리모컨은 아저씨가 쥐고 있었고 젊은 남자의 표정은 아직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유년기 소년의 얼굴이었다. 황금연휴의 시작 날, 분주한 모든 이가 서울역을 지나고 롯데 아울렛 앞에 펼친 천막 안 할인 상품들에 정신 팔린 동안,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조그만 자동차 얘기만 나누고 있다니. 흥미로운 광경이어서 사진 찍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나와 그들 사이의 거리는 너무 가까웠다. 사실 둘만의 얘기에만 심취해 보여서 몰래 찍었더라도 모르긴 했을 것이다. 


무인양품 매장에 가려고 계단을 오르며 다시 보니, 자동차 옆에 하늘을 잘 날아다닐 것처럼 생긴 어린아이 키만 한 비행기도 한 대 있었다. 통상 별다른 접점이 없을 듯한 누가 봐도 나이 든 아저씨와 풋풋한 청년이었다. 서울역 계단 귀퉁이에서 둘만의 세계에 빠진 그들을 지나치며 역시 '남자들의 세계'란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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