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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endar _ tue, November 18, 2014

집에 있던 달력은 아주 전형적인 것들이었다. 불교를 믿는 할머니에게 온 커다란 것, 은행이니 어디서 온 작고 책상 위에 세울 수 있는 것들. 때가 되면 죽 찢어 버리고, 빨라지는 세월만큼 다시 재활용함으로 들어가는 것. 손으로 무언가 쓰고 낙서하기를 좋아했지만 달력은 딱 그 정도의 가치였다. 변한 것은 스무 살 이후였다. 대학에 들어가고서 컴퓨터 본체 위, 어질러진 책상 위 어딘가에 올라간 탁상용 달력에 볼펜으로 빼곡히 무언가 적었다. 할 일과 한 일들. 일기는 프리챌 커뮤니티와 네이버 블로그에 주로 적었지만, 어떠한 표식을 남기고 그 날짜에 무언가 했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것은 제법 재미있는 규칙이었다. 고등학생의 시계 視界와 대학생, 즉 스무 살이 넘어 강남 촌놈을 벗어나게 된 이후의 세계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내게는. 이후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왔다. 종이로 만든 많은 것이 부정되었다. 부정이라고 표현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힘이 빠진 것은 사실이었다. 탁상용 달력은 주로 은행에서 겨울 언저리에 부모님께서 받아오신 것들이었다. 블로그와 이메일에 익숙해지는 만큼, 기록의 영역이 온라인으로 바뀌자 탁상용 달력도 시야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일정의 기록은 온전히 스마트폰이 차지했다.

이십 대 중반 언제인가, 다시 달력이 달라졌다. 아마도 도쿄 여행에서 마음에 드는 달력을 발견한 이후일 것이다. 이미 많은 걸 스마트폰으로 해결할 무렵이어서 굳이 달력을 '보러' 가진 않았지만, 한 번 꼭 가보리라 생각한 아오야마 동쪽의 어느 서점이었다. 2층에 있는 그 서점 주인은 내가 무척 좋아하던 아트 디렉터와 오랜 친구이기도 했고, 당시 열광한 잡지 <모노클 Monocle>의 추천 장소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부러진’ 어느 책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났고, 친절하고 한국 문화를 좋아하던 일본인 부인이 나의 인터뷰를 도와주었다. 연말 분위기를 내느라 분주하던 서점 한 귀퉁이에서 달력을 하나 발견했다. 거의 모든 날에 빨강을 칠한 달력이었다. 서점 주인이 설명하기를, 이 달력을 만든 그래픽 디자이너는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경일을 달력에 넣었다고 했다. 그래서 검은 보통의 나날보다 빨갛게 쉬는 날이 훨씬 많았다. 아마 달력이 아주 멋졌다고 해도 일본 명절만 표시되었다면 사진 않았을 것이다. 달력을 결제하려고 체크카드를 내밀었는데 이 카드는 숫자가 양각 陽刻되어 있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전자식 신용결제 기기 대신 작은 금속 기계에 카드의 파인 번호를 넣고, 그 번호를 인식하면 결제한 종이와 영수증이 나오는 구식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었다. 지갑을 뒤져 신용카드를 냈다. 모르긴 해도 내 돈 주고 처음 산 달력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에 걸맞은 결제 방식이라 생각해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어떤 쇼핑은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지만, 그래도 내게 오는 물건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일종의 경험으로 터득한 진리다. 우연히 발견한 소설가의 절판된 책, 사진가의 사진집, 새것과 다름없는 어느 테일러가 만든 캐시미어 코트 같은 것은 찾아다니지 않았지만 무척 자연스럽게 내게 왔다. 도쿄에서 달력을 산 이후로,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달력을 발견하거나 의도하지 않게 하나씩 내게 온다. 마음에 들고 예쁜 것이라면 사고, 그렇지 않아도 누군가 - 아직 달력의 즐거움을 아는 누군가가 - 만들어 선물해주었다. 그렇게 한 해에 딱 하나씩 마음에 드는 달력을 모은다. 지난 햇수로 치면 아마 일고여덟 개 정도 되었다. 그리고 훗날을 떠올린다. 한 해에 하나씩 마음에 드는 달력을 차곡차곡 모아 언젠가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그것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종이와 기록은 충분히 ‘디지털’로 대체할 수 있다. 어쩌면 더 편하고 사람들은 그에 적응했으며 나 또한 그중 한 명이다. 하지만 종이 달력은 그걸 매일 펼치지 않아도 일 년에 하나씩 늘어난다. 집착이 아닌 자연스러운 물건의 흐름이 내게는 달력에 있다(고 믿는다). 그런 상상을 하며 오늘, 좋은 달력 한 부를 고맙게 받아 새로 펼친다.


Seoul, S.Korea
tue, November 18, 2014

Beautiful calendar by hijk press
Hur Yu and JANG WOO CHUL, 365 days, 53 weeks, and 12 months from 2015
Printed and Bound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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