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31, 2016

그 모든 부끄러움과 새벽들 _ Thu, November 24, 2016

정치 뉴스를 보느라 새벽에 몰두하는 것이 하나의 버릇처럼 되었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합작한 게이트는 여전히 수많은 이야기를 던져서, 대체 끝이 어디인지 전혀 알 길이 없을 정도다.

어제 오후에는 소월길에 갔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일에 글 쓰는 제안을 받았는데, 아직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지만 무턱대고 하겠노라고 했다. 몇 시간이나 이어진 만남을 마치고 나오니 해가 꽤 일찍 떨어지는 요즘이라 그런지 이른 저녁이었는데도 밤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은 좁은 길에는 노란 은행나무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차선 하나를 모두 막은 퇴근길 자동차 조명들은 푹신한 낙엽과 쌀쌀한 바람에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감기 기운이 가시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어쩐지 바로 집에 들어가긴 또 싫은 저녁이었다. 그러나 이태원 대로를 조금 걷다가 집에 가는 택시를 잡았다. 이십 대 어느 시점에는 인생 통틀어 '편두통을 겪은 적이 없다'고 썼는데, 이제 감기에 걸리면,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편두통이나 멀미 증세를 제법 자주 느낀다. 아무래도 해가 저무는 월말이라 그런지 슬슬 나이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으레 무얼 계획하고 어떤 특별한 일들을 벌이거나, 추억해야 한다고 강박하지 않나 싶다. 몇 년 사이 어쩐지 삶에 치여서는 그런 감흥, 흔히 말하는 연말의 들뜬 기분을 느낄 틈조차 없었다. 대신 마지막 날만큼은 가장 친한 친구들과 그들의 연인이나 아내와 함께 새해가 되는 시간을 공유해왔다. 올해는 어떨까. 모르겠다. 어디 조금 생경한 이국에 무작정 가서 남의 나라 명절 기분을 느끼는 것 또한 방법이겠다. 그러나 내년 1월에는 아마도 바쁠 예정이라 마음과 상상만으로 족할 것이다.

인스타그램 계정 @yourboyhood에 지난 <서울 무제 SEOUL UNTITLED> 전시에 내놓은 수필 백 편을 하나씩 순차적으로 올리고 있다. 덕분에 직접 쓴 '예전' 글들을 본다. 2006년에서 2007년, 2008년으로 넘어간 과거의 나와 글, 생각을 보면 솔직히 부끄러울 때도 있다. 그래도 그 모든 부끄러움과 새벽들을 삭제하거나 망각하고 살진 않았고 그것만이 무언가 노출한 공간에 표현하며 지킨 하나의, 혼자만의 원칙이었다. 쌓인 것들이 쌓인 만큼의 가치와 동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도, 의도하여 규칙적으로 올리는 과거를 다시 보면 그때 생각도 나고, 여러모로 다시 무언가 쓰고 싶어진다. 표현의 무수한 방법들과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에 항상 호의를 품으려 노력하나, 익숙한 무언가를 지속하여 조금씩 다르게 바라보는 것 또한 제법 괜찮은 일 아닌가 싶다.

 2012년 6월 재단장 이후의 일본 잡지 <뽀빠이 POPEYE>는 내 작업 전반과 여러모로 커다란 영향을 끼쳐 왔는데, 얼마 전 한스 미디어라는 출판사에서 이메일을 받았다. 이 잡지에 3년간 연재한 칼럼을 모은 <나와 선배>라는 책 한국어판이 나왔으니 블로그에 리뷰를 써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었다. 추측건대, 네이버 검색으로 'POPEYE'나 '포파이(나 또한 초반에는 잡지 이름을 쓸 때 '포파이'와 '뽀빠이'를 고민했는데, 한국에 익숙한 고유 명사를 따르기로 했다. 또한, 좀 더 정확히 발음하면 일본식 발음 포파이 대신 파파이가 옳다)'를 치면 이 블로그가 나오긴 할 것이다. 

'나와 선배 ボクと先輩·Boku to Senpai'라는 칼럼은 <뽀빠이> 뒤쪽에 꾸준히 두 쪽씩 차지하던 터줏대감으로, 일본어를 '읽을 줄은' 아는 나 역시 항상 눈여겨보았다. 익숙지 않은 인물들이 나온 일본 잡지 연재물을 한국판으로 발행할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연락은 되려 반가웠다. 책은 엊그제 저녁 집에 왔고, 서문과 몇 쪽을 읽었다. 벌써 아쉬운 점이 조금 눈에 띄지만, 제대로 시간을 들여 책을 읽은 다음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글을 쓸 생각이다. 참고로 <선배와 나>라는 칼럼은 단순명료하면서도 흥미로운 구성의 연재물 모음인데, 1973년생 사진가인 필자 히라노 타로 平野太呂·Taro Hirano가 자신보다 '선배'인 사람들을 한 달에 한 번씩(월간지니까) 찾아가 만나 대화하고, 짧은 글과 필름 사진으로 기록한 내용을 모은 것이다. 

오늘 미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화려한 패션 사진은 그게 맞는 누군가의 영역이라는 생각이라 그보다 진득하게 시간 들이고 조금 더 세월의 힘이 들어간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 사진에 언제나 흥미가 있다. <나와 선배>는 서른여섯 번의 연재를 마치고 종료했는데, 이제 <나와 후배>라는 제목으로 73년생 사진가가 어린 후배들을 찾아가 만나는 내용으로 180도 바뀌었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이런저런 경험도 하고 들은 이야기와 들려줄 이야기도 있는 중간 지점의 사람이 선배들을 만나고 후배들을 만난다. 그것을 기록하고 남긴다. 좋은 작업이다. 

종종 일하며 인터뷰를 준비할 때, 과정이나 마무리는 언제나 벅차고 힘든 과정이어도 그들과 대면한 순간에 느끼는 두근거림과 끄덕임이 자꾸 모르는 누군가와 만나도록 이끌었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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