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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Pharmacy _ Thu, February 02, 2017


2017년 두 번째 달이 시작되었는 줄도 모르고 이틀이 지난 오후, 강남 곳곳을 숨 가쁘게 다니다 붕 뜬 시간에 조금 걸었다. 오랜만에 신은 알록달록한 운동화는 어쩐지 오른쪽 끈만 자꾸 풀리고, 지난 일주일을 온전히 쏟아부어 만들었으나 여전히 부족해 아쉬운 촬영장에 둔 얇은 아웃도어 장갑이 아쉽다. 오늘만 또, 어쩐지 입지 않은 터틀넥 스웨터를 생각하며 찬바람을 견디다 약국이 보여 들어갔다. 

약국에도 평균의 규모란 게 있다면 그보다 작을 것이 분명한 사각 공간에 들어서니 이미 처방전을 낸 중년 아저씨 한 분이 서성이며 기다린다. 흰머리와 검은 머리가 절묘한 회색빛으로 섞인 약사님은 초로의 여성인데, 왠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나는 장식 들어간 금속 안경테 아래 고요하게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아무 기척 없이 조금 어색할 만큼 정적으로 깔린다. 시끄러운 바람 소리와 추운 기운이 차단된 실내 장식장에서 기능성 투명밴드를 하나 집어 들고는 바로 궁금한 처치를 묻지 않고, 외국 여느 가게처럼 그저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먼저 손님으로 온 아저씨가 요청한 약을 지으러 들어간 사이, 문득 약사님 자리 왼쪽 위 책장에 짐짓 어울리지 않은 소설책이 가득한 모습을 보았다. 다양한 취향이 혼재한 책장 몇 칸에 대번 눈에 들어오는 건 애거서 크리스티 Agatha Christie의 오래된 문고판 소설책이다. 

절판된 것이 분명한 낡은 소설의 낯선 제목을 보니 이전에 읽은 책은 아니었는데, 나를 포함한 두 명의 손님이 셋이 된 시점에야 처음 들은 노 약사님의 보기보다 부드럽고, 그러나 정확한 목소리와 꼿꼿하고 전문적인 태도가 그의 작은 서가에 놓인 소설들과는 제법 괴리가 있어 혼자 문득 찰나의 상상을 펼쳤다. 그는 내 또래의 딸이 하나 있는데 그 역시 어머니를 따라 함께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가 된 것일까. 그래서 애거서 크리스티와 최근 연애 소설이 무분별하게 꽂혀 있는 것일까, 하면서.

시간으로 치면 몇 분 남짓 되지 않고, 나가는 뒤로 온 손님이 들고 온 처방전에 포함한 약들이 이 약국에는 없네요, 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휙, 하고 문을 밀어내 현실로 돌아온다.


Seoul, S.Korea
Sun, February 05, 2017

Neighbor's cafe


photograph by Hong Suk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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