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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정리한다 _ Sat, September 03, 2016


원고를 하나 써야 하는데, 새벽 늦게 잠들어서 정오 즈음 일어난 후 냉장고에 있던 카레에 치즈와 달걀을 풀어 전자레인지에 3분간 돌렸다. 달걀이 약간 엉성한 반숙처럼 익고 치즈는 물론 범벅이 되는데, 입맛 없는 오후 끼니를 대충 때우고 싶은 요즘 발견한 방법이다.

오늘까지 글을 넘기자, 마음먹었지만 아직 발동 걸리기 전이고 오랜만에 혼자 있는 토요일 오후라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몇 가지 한다. 무료 시청 기간 한 달이 막 지난 넷플릭스 Netflix로 <브로드처치 Broadchurch> 두 번째 시즌을 건성으로 곁눈질하며, 역시 손 놓고 있던 예전 작업실에 두고 쓴 무인양품 無印良品의 불투명한 이동형 플라스틱 수납장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한가득 버릴 영수증 더미며 고장 난 이어폰 사이로 <스펙트럼 spectrum> 매거진을 처음 만들 때, 그러니까 2010년 11월에 쓴 전자 메일을 출력한 계획서 비슷한 게 나와서 잠시 예전 생각도 났다. <브로드처치> 첫 시즌은 그야말로 감탄하며 보았다. 강렬하지 않지만 서서히 죄어오는 감각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해안가 풍경이 특히 그랬다. TV 드라마는 아무리 돈을 들여도 '스펙터클'만 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영상이 꽤 섬세했으니까. 하지만 두 번째 시즌은 여러모로 많이 바뀌어서 첫 시즌만큼 흥미는 없다.

수납장 안에 또 수납공간을 마음껏 나눌 수 있는 구조의 서랍장 안에 이제서야 대강 무엇이 어디에 들었는지 알게 된 후,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새로 들일 옷장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잡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게 '잡지를 정리한다'는 건 글을 쓴다든지, 하여 참여했던 여러 잡지 중 내가 기고한 부분과 표지를 자르고 나머지는 휙 읽어본 후 차곡차곡 모아 아파트 폐지 모으는 곳에 보내는 과정을 뜻한다. 이렇게 쓰니 뭔가 동족상잔 느낌도 들고, 종이 잡지에 애정이 있다면서 양면적인 기분도 들지만 사실 공간이란 제약이 있고, 종종 마련하는 이 같은 기회에 읽어 보는 철 지난 패션 월간지들은 대체로 월간지 본연에 무척 충실하여 오래 두고 읽을 정도의 흥미는 여느 출판물에 비할 바 아니다(당연하다면 당연하더라도).

이건 사야 해, 이번 시즌에는 저 색깔이야, 마침표와 쉼표보다 느낌표 두 개쯤으로 끝나는 수많은 이야기와 새로 생긴 공간과 새로 무언가 하기 시작한 사람들….

그들은 모를지언정 우러러보는 선배 기자들이 노력하여 쓴 주옥같은 읽을거리나, 준비하며 얼마나 고되었을지 느껴지는 특별한 화보가 물론 그 안에 함께 담겼지만, 사실 월간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들인 노력이 결국 한 달 후 사라지는 허망한 기분을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물론 이 일도 밥벌이이긴 하나, 적어도 일반적인 회사에 다니지 않기로 어릴 때 결심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이 업계에 들어온 경우가 많고, 무언가 할 때나 준비할 때는 분명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 것이 생각보다 훨씬 짧게 생동하고 사그라지거나 혹은 그도 저도 아니게, 파도 끄트머리의 거품만큼이나 금세 사라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 또한 여러 잡지를 만들거나 참여할 때 어느 정도는 그러했다.

표지와 글이 들어간 부분은 기껏해야 몇 쪽에 불과하여, 책장 한쪽을 당당히 차지하던 무겁고 거대한 잡지들의 빈자리는 고작 몇 권의 해체 작업을 거치면 금세 눈에 띌 정도가 된다. 지금껏 수백 권의 잡지에 기고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잡지를 사들이거나 참여한 대가로 증정본을 받았다. 종종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기분으로 오래된 잡지를 정리하면서도, 종이 잡지를 '자르고 버린다'는 느낌에 어딘지 모르게 서늘해지고, 수년 전 기사를 보며 그때는 홀로 고고할 것 같던 무언가들이 쉽사리 잊히는 광경도 누구네 인생을 바라보듯이 알아차릴 정도는 되었다.

흠, 그저 조용하고 고요한 토요일 오후이지만 이전에 무얼 했다는 자랑스러운 감상이 아님에도 글로 좀 남기고 싶었다.


Seoul, S.Korea
Sat, September 03, 2016

A Fashionable Life of fashion magazines


photograph by Hong Suk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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