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cle] ‘한 번 사는 인생 You Only Live Once’


Bling Magazine
March 2016 issue

‘한 번 사는 인생 You Only Live Once’ 

‘욜로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주제로 글을 하나 써달라는 요청이 왔다. 글이 나갈 잡지는 음악과 문화를 다루는 <블링 Bling>이다. 취지(?)에 맞도록 자유롭게 써 내리기로 했다. 

지난 1월, 어떤 TV 패션 광고를 봤다. 광고 자체는 딱히 특출나지 않았다. 유명한 연예인이 등장하고, 조연 역할의 남녀 모델이 있고, 예쁘장한 이미지와 화려한 배경이 등장하는…. 그들이 한껏 내세우고 싶었던 제품이 무엇이었는지는, 광고를 여러 번 봤음에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광고에 등장한 문구 ‘You Only Live Once’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적어도 나 같은 소비자에게 전달한 셈이니, 잘 만든 광고였을까? 솔직히 고개를 끄덕이긴 어렵다. 내가 그 카피를 기억한 이유는 ‘한 번 사는 인생’, 즉 ‘YOLO’가 2017년 트렌드라고 외친 꽤 많은 연말연시 유행 분석 보고서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1년 전 이런 색이 유행할 겁니다, 하며 자신 있게 말한 팬톤 PANTONE ‘올해의 색’처럼 말이다.

광고는 대중과 가장 가까운 매체다. TV 광고는 파급력도 어마어마하다. 많은 전문가가 앞다투어 ‘YOLO’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으니, 광고주는 자신들의 주 고객층인 젊은 소비자들 입맛에 맞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매체들이 선동하여 만든 라이프스타일의 환상을 곧이곧대로 따를 만큼 순수하진 않다.

‘한 번 사는 인생’, ‘인생은 한 방’, ‘단 한 번뿐인 삶’처럼 같은 영어 축약어를 한국어로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각 해석에 따라 조금씩 뉘앙스도 다르다. 한 번뿐인 삶이라는 명제 자체에는 공감해도, 인스타그램 속, 보통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풍경에 들어간 삶을 그저 찬양하고 침 흘리기엔 너무 때가 탄 사람들이 되었는가 싶다.

사실 한 번뿐인 인생이란 말은 그야말로 달콤하다. 모든 이가 여전히 찰리 채플린의 1936년 작 영화 <모던 타임스 Modern Times>처럼 산다. 하나둘 나이를 먹고 자신의 직업에 정착한 주변 사람들과 대화할 때, 혹은 소주병을 가운데 두고 좀 더 차분하고 늦은 밤에, 그들은 한 번 사는 인생의 찬란함을 예찬하는 대신 그들 각자가 처한 환경의 착잡함을 이야기한다.

찰리 채플린은 거대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나사못을 돌리며 21세기에도 여전한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측했는데, 재밌게도 이번 원고를 준비하며 찾아보니 <단 한 번뿐인 삶 You Only Live Once>이란 영화가 1년 후 나왔다. 헨리 폰다 Henry Fonda와 실비아 시드니 Silvia Sidney 주연으로 범죄 드라마와 로맨스를 섞은 이 고전 영화는 명작 반열에 오르진 못해도 비일상적인 삶을 다룬 셈이니 ‘You Only Live Once’라는 원제목과 잘 맞는다.

요즘 사람들에게 이 단어를 널리 퍼트린 원인(?)으로 뉴스 매체들은 드레이크 Drake의 랩 음악 ‘모토 The Motto’를 꼽는다. 2011년 발매한 <The Motto>는 싱글 음반으로 미국에서만 300만 장을 판매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기는 고스란히 이 단어를 멋들어지게 쓴 드레이크의 주요 지지층 청소년들에게 넘어갔다. 

인스타그램에서 ‘#YOLO’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2017년 현재 자그마치 2천4백만 개가 나온다. 드레이크는 자신의 노래 덕분에 ‘인생 한 방’이란 단어가 널리 퍼지고 비엔나소세지처럼 관련 상품들이 쏟아지자, 아예 이 단어의 상표권을 등록하려고 했다(평범한 축약어라 물론 실패했다).

내가 처음 이 단어를 인지한 건 지금으로부터 약 십 년 전인 2006년이었다. 그때는 아직 힙합 음악보단 록 Rock 음악의 새로운 변종들이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서도 CD가 지금보다는 더 팔리던 시절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열린 2006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전설로 남은 음악 축제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쏟아진 폭우에 질퍽한 진흙 바닥이었다. 

휴게실이었는지 어디였는지, 그곳에서 스트록스 The Strokes의 뮤직비디오를 봤다. 스트록스는 당시 최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흰옷을 입은 줄리언 카사블랑카스 Julian Casablancas가 네모난 화면 속 밀폐 공간에서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르다 구정물에 서서히 젖어 드는 뮤직비디오는 당시 이십 대 초중반이던 내가 생각한 ‘젊음 youth’으로 보였다.

한 번 단어가 머리에 박히고는 압구정동 술집 이름에도 YOLO가 눈에 들어왔다(‘겐조 단란주점’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그리고 2017년 지금, 이 단어가 십 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다시 젊은이들의 ‘모토’가 되었다는 소식을 마주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십 대가 된 이후, ‘웰빙 Well-being’ 같은 단어가 사람들 사이를 휩쓸고는 이제 누구도 그 단어를 별반 입에 올리지 않는 걸 떠올리면 ‘YOLO’는 삶의 태도 중 하나일 순 있어도 다분히 논쟁적인 단어다.

작년 11월과 12월 터진 대한민국 촛불집회와 탄핵 정국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강대국들은 어쩐지 극우파들이 야금야금 지배하며 그야말로 판타지 같은 일들을 벌이고 있다(멕시코에 진짜로 장벽을 만들겠다는 트럼프를 보라). 개인들이 대체로 바꿀 수 없어 좌절한 경험도 지니고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체험도 겪었다. 수백만 명이 모인 몇 달의 기억을 넘어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TV 광고들은 한 번뿐인 인생의 찬란함을 이야기하는데, 주변에 실제로 존재하는 업계 사람들은 단 한 번도 호황기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남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시간을 죽일 때, 어쩐지 보게 되는 블로그는 비슷한 듯 다른 작은 일상 속 이야기를 꼬박꼬박 기록한 남들의 나날이었다. 자랑과 허세라기보단 어느 정도 고민과 여행과 맛집과 취미가 담겼고, 일이나 현실 세계의 그는 그저 지레짐작으로 추측할 정도였다. 블로그 속 여행기는 수더분해도 즐거워 보였다. 지금 내게 ‘YOLO’라는 단어는 이런 느낌이다.

막연한 환상이나 버킷 리스트처럼, 누구나 꿈꾸지만 소수만 실행하는 동경은 아니다. 그저 지나가면, 냉정하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삶을 조금 천천히 바라보는 거다. 놀 때도 일할 때도 어쩐지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만, 그래서 요즘은 남들이 아니라 내가 보는 시각으로 조금씩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한다.

이사 온 지 10년이 넘은 집에서 물건과 책을 내 키만큼 쌓아서 몇 번이나 버리고, 동시에 거대하고 오래된 책상과 부속품들을 버렸다. 그 자리에 마음에 드는 단출한 나무 책상을 놓았고 LED 전구를 낀(우리 집 최초의 LED 전구다) 검정 철제 스탠드를 하나 두었다. 작년에 6개월 정도 재직한 잡지를 그만두고는 뭐라도 내 걸 만들 때가 되었노라며 2주 간 파리 여행을 갔다.

패션 위크를 보고, 다시 그 동네 지리를 익히고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여행은 참 좋았고 여운도 꽤 남았지만, 그렇다고 드라마틱하게 삶의 궤적이 바뀌진 않았다. 그저 조금씩 실행하며 고친다. 그 정도 호흡이 내겐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큰 만족감을 준다. 신기하게도.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 ‘YOLO’는 새로 나온 라이카 Leica의 거리계 연동 카메라 Range Finder camera ‘M10’에 가 있다. 두 개의 상을 하나로 맞춰 찍는, 요즘은 스마트폰 카메라도 흔한 자동 초점 기능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890만 원 카메라다. 거금을 투자해 ‘질러버릴까?’ 싶다가도, 그 가격에 렌즈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쓰린 현실을 깨닫고 마음을 다스리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런 삶이다.


© <The Motto> Music Video by Drake(feat. Lil Wayne), 2012.



© <You Only Live Once> Music Video by The Strokes, 2006.



© <You Only Live Once> Movie Poster, 1937.



© Leica M10 Range Finder camera, 2017.

<블링 Bling> 매거진 2017년도 3월호에 쓴 글입니다. 제목과 내용을 편집하기 전, 원본입니다.

I wrote this article, named 'You Only Live Once 한 번 사는 인생' that contributed on <Bling> magazine's March 2016 issue.


Written by Hong Sukwoo 홍석우
Fashion Journalist, <The NAVY Magazine> Editor/ Fashion Director.

서울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컨설턴트, 수필가인 홍석우는 패션 바이어와 스타일리스트, 강사 등을 거쳐 미국 스타일닷컴 Style.com 컨트리뷰팅 에디터와 서울의 지역 문화를 다룬 계간지 <스펙트럼 spectrum>과 <어반라이크 Urbänlike> 편집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의 거리 사진을 올리는 블로그 ‘yourboyhood.com’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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