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봄의 라프 시몬스

Raf Simons Spring/Summer 2004 'May the Circle Be Unbroken' collection.

개인적으로 완벽함에 가까운 스웨트셔츠 sweatshirt와 파카 hooded parka는 라프 시몬스 2004년도 봄/여름 시즌에 전부 나왔다. 안감에는 기모를 넣지 않고, 운동복을 철저하게 복각하여 손목과 허리춤을 조이는 립을 사용하는 여느 브랜드들과 달리 소매와 소맷단의 소재가 같아 자연스럽다. 약간 헐렁한 치수에 약간 주술적으로도 보이는 비즈 장식 액세서리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이전 시즌들과 달리 처음으로 파스텔 색상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코스믹 원더 Cosmic Wonder, 본 소노 Von Sono 같은 디자이너들과 안트워프의 대가들이 아직 '재능 넘치는' 수준으로 평가받던 마지막 시대였고, <퍼플 Purple> 매거진에 마크 보스윅 Mark Borthwick 같은 사진가가 스텔라 태넌트에게 마르지엘라를 입힌 게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아직 '빈티지 vintage' 취급받으며 천정부지로 웃돈이 붙기 전의 라프 시몬스 스웨트셔츠들은 시즌이 지나면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처럼 이베이 eBay에 '염가'로 등장했다. 고급 패션 high fashion을 따르는 어떤 스타일의 옷과 신발과 장신구도 결국 유행 한복판에 있다는 걸 알기에 놓쳤다고 해서 아쉽지 않지만, 2004년 봄에 나온 라프 시몬스의 스웨트셔츠들을 다량 구매하지 않는 건 두고두고 종종 후회한다. 학생 기준에서도 충분히 살 만했단 말이다. 추신. 고작 십 년 남짓 지났을 뿐인데, 이 시즌의 해상도 높은 사진을 구하기 꽤 어렵다는 사실에 역시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오르지 않는다고,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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