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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 Day 3 — Night walks on the beach


지금 있는 곳은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라는 곳이다. 제주국제공항에서 택시를 타면 50분 정도, 버스를 타면 한 시간은 족히 넘는 외진 동네다. 성수기가 아닌 지금은 금요일 밤에도 그야말로 적말 그 자체이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10분 정도 걸리며, 카드 결제가 되는 음식 배달 앱 등록 식당조차 없다(무려 치킨집이 단 두 개뿐). 땅끝마을 느낌이다. 금요일에는 다행히 비가 그쳐서 카메라를 들고 밤을 나섰다. 개장하려면 한참 남은 화순 금모래 해변이 걸어서 3분 정도 걸린다. 이곳도 적막이다. 낮이라고 다르지 않다. 첫날 오전에 도착하여 체크인 시간보다 일러서 짐을 미리 맡겼는데, 한 바퀴 돌아보려고요, 하니 볼 게 하나도 없다며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던 호스트 아내의 표정을 이제는 이해한다. 공항에서 마주친 수많은 관광객이여, 모두 어디에.

'동네 사람들이 다들 일찍 자나?' 싶을 정도로 가로등조차 거의 없다. 혼자 다니면 좀 무서운 느낌이다. 이 넓은 길에 혼자 있다는 감각은 꽤 비현실적이다. 이런 배경이라면 단편 좀비 영화 정도는 거뜬히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 조용한 동네를 밤과 새벽 사이에 걸었다. 오래된 간판들을 보았다. 상아색과 하얀색 중간에 있는 커다랗고 오래된 목욕탕을 보았다(가볼까 고민했다). 흑백 사진을 찍었다. 수동 초점으로 렌즈와 조리개를 조작하고, 여행 전에 산 비조플렉스 Visoflex Typ020 전자식 뷰파인더 EVF를 써보았다. 광학식 뷰파인더에 적응하였는데 어두운 밤에 쉽게 초점 맞추기는 비조플렉스가 좋다(배터리는 빠르게 소모한다). 커다란 LCD 화면을 보면서 렌즈를 돌려 초점을 맞추는 라이브 뷰 live view 기능은 쾌적한 자동 초점 카메라와 달리 퍽 귀찮다. 떠나기 전, 오전에 한번 걸어보자고 생각했다. 하늘을 뒤덮은 별만큼은 실컷 보았다고, 작게 혼잣말하며 숙소에 왔다.

원래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 오늘은 두 캔을 마셨다. 꾸역꾸역 불면의 밤은 여기서도 이어진다(이 정도면 자발적이다). 요즘 사람들이 이 섬에 와서 으레 하는 것들을 아마도, 거의 하나도 하지 않았다. 좋은 카페, 공간, 뭐 원래 유명한 관광지와 맛집 방문 같은 것들. 심지어 여기까지(!) 와서 정가를 주고 제주에 단 하나 있는 스트리트웨어 편집매장에서 디스이즈네버댓 thisisneverthat 큰 치수 윈드브레이커와 검정 스웨트팬츠를 샀다(종규네 컬렉션에 입고 갈 것이다, 아마도). 반동이라면 반동이고 반작용으로 볼 수도 있다. 지난번 - 이라고 해도 벌써 2010년인가 2011년인가 가물가물 - 제주에 왔을 때 의무처럼 렌터카를 타며 다녔던 기억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올레길 이후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이곳을 사랑할 때, 감흥이 적었다. 

여행을 가서 무언가 얻으려고 할 때 왠지 더 조바심이 나고 부족함을 느낀다. 이번에는 그런 것을 좀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래서 컴퓨터를 가져갔고, 일하고, 빨래하고, 종류는 부실하고 편협하지만 서울처럼 집밥을 먹었다. 심지어 여기서 세금도 냈다(물론 인터넷 뱅킹). 블랭코브 Blankof 배낭 daypack에 최소한의 짐만 꽉 차게 들고 왔다. 그래도 여전히 무거웠다. 다소 본격적이지 않은 등산 가방을 사는 일은 없을 것만 같았는데 서울에서 짐을 챙기며 가장 요원하였던 것이 좀 넉넉한 크기의 배낭이었다. 돌아가는 날에는 그날 입을 옷만 빼고 옷가지들을 편의점 택배로 부쳐볼까 한다. 국내 여행이라면 해볼 법도 한 시도였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Jeju, S.Korea
Sat, March 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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