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berry, Diary from the Nineties


서울에서 버버리 Burberry의 최전성기는 크리스토버 베일리의 시대가 막 시작한 무렵에 왔다. 막 대학생이 되었고, 2002년 월드컵 열풍이었으며, 일본 라이센스로 생산한 블루 라벨과 블랙 라벨이 일본 아이돌 소년의 인기와 함께 내가 관심 있는 세상을 휩쓸었다. 이후 매출 규모로는 훨씬 성장했겠지만, 아직 무언가 하나 유행하면 그 한 가지를 대체로 수용하는 시절의 끝물이었다(2017년 겨울, 롱 패딩 열풍이 지속해서 여러 개 있었다고 보면 된다). 그때 쓰던 다이어리를 몇 주 전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꺼냈다. 고등학생 시절, 또래 여자애들이 몰두한 다이어리에 '잠시' 동참하였던 기억이 고스란히 존재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그 일기장 속 시간은 대학생 초입 무렵에 멈춰 있었다.

'아직도 이런 걸 사람들이 쓰나…?' 싶은 마음으로 교체용 속지를 검색해보니, 요즘은 '육공 다이어리'라고 부르는 일종의 복고풍 아이템 retro item이 되었다. 브랜드 제품보다는 PCV 합성수지로 만든 투명한 표지가 유행인 걸까. 아무튼 속지를 샀고, 생각보다 두툼하게 채워졌다. 공책과 펜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사실 기록을 남기고 여러 기기에서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태블릿 PC와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를 따라오기는 어렵다. 그 '맛'이 다른 거다. 일단 이 버버리의 클래식 체크무늬 가죽 다이어리를 책상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다. 일반 다이어리보다 작은 공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새 종이를 끼워도 쉽게 마음이 가지는 않는다. 언제고 한번 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가지고 다닐까. 언젠가 촌스럽다고 버려진 유행이 그때를 겪지 않은 이들로부터 다시 나타나는 모습들이 흥미롭다. 소극적으로 한 번 동참해보았다.


Seoul, S.Korea
Mon, April 09, 2018

Burberry Classic Check Notebook Pl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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