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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묘벼룩시장 Dongmyo Flea market' _ Arena Homme Plus Korea, April 010 issue

아레나옴므플러스 2010년 4월호 Arena Homme Plus Korea, April 2010 issue

'동묘벼룩시장 Dongmyo Flea market'


1.


스무 살인가 스물한 살 때인가, 한창 '구제' 옷에 빠져 있었다. 낡지만 하나 뿐인, 기성복과 다른 독특한, 그리고 세월이 겹겹이 쌓인 헌 옷이 주는 만족감이 있었다. 주머니에 든 동전 몇 개, 모르는 사람이 쓴 쪽지를 우연히 발견하는 일부터 비록 시작은 공산품이었지만 손때와 사람 냄새를 담아 이제 한 벌 뿐이 없는 그 옷들이, 그것들을 입었을 때의 기분이, 스스로 남들과 조금 다른 영역을 탐험한다는 우쭐함도 들게 했다. 구제든 빈티지든 헌 옷이든, 지금은 당시만큼의 감흥은 없지만, 그 경험들은 알게 모르게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폴로 랄프 로렌과 나이키와 닥터마틴이 점령한 압구정동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던, 강남 촌놈이 옷에 눈 뜬 것은 고3 봄의 일이었다. 당시는 마치 '빅 브라더'가 조종하듯이 모두 똑같은 브랜드,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그 반작용 때문에 남과 달라 보이려고 그리 애썼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서울 안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이란 이름이 붙은 곳은 다 뒤지고, 창고 대방출이니 눈물의 고별전 같은 행사도 성지 순례하듯 돌았다. 당시의 나는, 말하자면 옷에 미친 아이였다. 90년대에 망한 수입원에서 팔다 남은, 어느 창고 세일 행사에서 발견한 '메이드 인 프랑스' 아디다스 스니커즈가 최고의 보물이었다. 수능 보기 전날엔 보통 시험 볼 학교를 사전 답사하고 마음을 가다듬지만, 나는 그 폭풍전야에, '거평프레야'에 갔다. 당시 친하던 20대 초반 매장 누나는 "야, 수능은 반이 운이야." 라고 했다.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미용사와의 소통 부재로 실패한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소년이 그 앞에 앉아 있었다.


2.


밀리오레와 두타가 동대문 도매시장 옷들로 한창 잘 나갈 때, 거평프레야 5층은 헌 옷의 천국이었다. 맡아본 사람은 다 아는 구제 냄새가 괜스레 마음을 편하게 했던 그때, 리바이스 501이나 폴로 셔츠의 취향이 패딩이 들어간 워크 점퍼와 어머니가 학생 때 입었을 법한 갈색 스웨이드 재킷으로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년에게 구제와 헌 옷, 빈티지는 문화 충격에서 삶의 일부가 되었고 그중 9할은 동대문에서 나왔다.


그러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그냥 버스타고 가다가, 동묘 벼룩시장을 발견했다.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보물 142호, 서울 동묘(東廟)를 둘러싼 길에 거미줄처럼 퍼진 벼룩시장이었다. 동대문에서 한 치 앞이지만 너무나 다른, 그곳은 한 마디로 별천지요 신세계였다. 화려한 인테리어도, 잘 정리된 구역도 없는 난장판 도떼기시장이었지만, 조금씩 변질되던 동대문 장사꾼들과 시비하고 싶지 않던 나는 되레 그 무질서가 편했다.


처음에 어떻게 동묘 벼룩시장을 찾았는가 떠올리면, 종종 타고 다니던 종로와 동대문운동장 가는 버스 안에서였다. 원체 관찰하는 걸 좋아해 수시로 풍경을 두리번거리는데, 항상 지나치는 골목 안이 신경 쓰였다. 그날도 종암동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무언가의 짐 더미들과 우글우글한 인파를 보았다. 천근만근의 몸이었지만 일단 내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명동 초입처럼 많았다. 길거리에는 어딘가에서 가져온 옷들이 성벽처럼 쌓여 있었다. 그 옷더미를 헤치는 작고 단단한 손들은 대체로 자글거리는 주름이 있었고 우악스러웠다. 2만원, 3만원하던 구제시장 물건들이, 물론 다르긴 했지만, 천원 2천원이었다. 아아, 여긴 천국이구나.


옷더미의 길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동묘 돌담 벽과 고가다리와 평행을 이룬 노점 행렬. 나는 압도당했고, 흥분했다. 정신을 차리니 손에는 갖가지 물건이 가득한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또래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노(老)신사숙녀의 행렬에서 보물찾기의 승리자가 된 기분이었다. 개나리가 지던 봄의 끝자락, 2003년의 일이었다.


3.


동묘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동묘 지정 쇼핑백쯤 될까. 야구장에 글러브와 야구방망이가 있는 것처럼 동묘에는 왠지 검정 비닐봉지가 있다. 그 까만 봉지 안에 사람들이 찾아낸 갖가지 물건이 들었다. 그중 내게 온, 몇 가지 기억 남는 물건이 있다. 자수가 들어간 폴로 랄프 로렌의 치노팬츠는 매장에서 정가를 주고 사기엔 조금 주저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동묘에서, 조금 ‘비싼’ 옷만 골라놓은 행거에 걸린, 검정색에 흰색 자수가 들어간 치노팬츠를 발견했다. 한 5년은 단골로 다녔지만 나도 그들도 숫기가 없어 친해졌다고 하긴 힘든, 아주머니 둘과 아저씨 한 분이 하는 터줏대감 집이었다. 이건 에눌할 것도 없이 당장 사야겠다! 마음먹고
"얼마에요?“
물어보니, 좀 비싼데…. 하시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6천원.”
비싸다는 것에 대한 동묘의 기준은 이렇다. 바로 돈을 내고, 지금까지도 잘 입는다.


동묘의 옷들은 주로 아파트 헌옷함처럼 정말로 사람들이 입던 데서 가져온 게 많아서, 그날그날에 따라 물건이 다르다. 어떤 날에는 '음, 이건 강남 쪽인가.' 싶고, 어떤 날은 '오늘은 세탁소에서 나왔군.'하고 알게 된다. 물건을 한데 모아 쌓아놓은 모습이라, 남들 사이에 껴서 뒤지기 싫은 사람은 질색할 수도 있다. 그게 동묘의 묘미이지만서도. 한 번은 아주머니들 아저씨들 사이에서 한발 물러서 구경만 하는데, 웬 아저씨가 옷더미 사이에서 쑤욱 하고, 마치 낚시로 대어를 건지듯 두툼한 무언가를 꺼냈다. 순간 철렁했다. 장 폴 고티에의 빈티지 데님 재킷이 나온 거다. 물론 가격은 천원. 그것은 명백한 이십 대의 옷이었다. 5초쯤 고민하다,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거 혹시 입으실 거예요? 애들 옷인데…. 저한테 넘기세요."
그런가? 허허, 하시며 아저씨는 천원을 받으셨다.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99%의 헌 옷가지들 더미에선 이렇게 종종 보물이 나온다.


그렇게 옷을 사들인 게 5년이 넘으니 집안 옷장은 통제 불능이 됐다. 소비생활의 반이 옷, 나머지 반은 책과 잡지들인데 저렴한 가격에 일단 사고 보자는 마음으로 사들이니 쌓아둘 곳도 부족했다. 종암동에서 길음동으로 이사했을 때, 큰마음 먹고 그 옷의 절반 이상을 '아름다운 가게'에 보냈다. 바이바이 동묘, 의 기분으로 지난 옷들을 차곡차곡 개면서, 그래도 좋은 일에 쓰이니까, 하며 뿌듯해 했다. 그게 2006년 11월의 일이고, 그 후로 동묘에서 '옷'을 사는데 돈을 많이 쓰진 않는다. 요즘 동묘에서 나의 동선은, 일단 동묘역 출구에서 나와 바로 보이는 옷더미들을 슬쩍 보고, 구두나 스니커즈, 낡은 이스트팩 가방이 있나 확인한 다음, 어느 초등학교와 문구점을 지나 나오는 골동품점 길에 몇 개 있는 '헌책방'에 간다. 책의 장점은 빈티지 옷의 장점과 닮아서, 낡아도 그게 후진 게 아니란 거다. 고전이라든지,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소설이라든지, 아니면 디자인서점에서 비싸게 팔리는, 약간 구식이긴 하지만 괜찮은 몇 권의 단행본을 사들인다. 마크 제이콥스가 표지를 장식한 인터뷰(Interview) 매거진이 3천원, 20세기 초반부터 90년대까지의 잡지 아트 디렉터에 대한 책이 5천원, 온갖 독립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폰트를 모은 책이 만 원 정도. 최근 산 마음에 드는 책은 1950년대의 일상복을 브랜드 별로 모은 단행본이다. 아마 20년대, 30년대 순으로 나오는 듯하다. 고작 4천원에 1950년대의 일상복을 볼 수 있다는 건 실제 옷을 샀을 때만큼 기쁨을 준다.


4.


사실, 동묘 벼룩시장의 '전성기'는, 내가 아는 한 지났다. 동묘의 전성기는, 아직 그 주변에 층 낮은 건물이 가득해 오래된 서울의 잔상이 남았던 2000년대 중반에 사그라졌다. 고가도로는 천(川)이 되고, 낡은 단층 건물은 무슨 타워니 무슨 캐슬이 되었다. 땅의 터전을 지키던 이들도, 건물이 무너지고 마천루가 솟은 것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지금의 동묘는 내 이십 대 초반의 기억에서보다, 풀이 죽어 있다.


그러나 전성기가 지났다고 삶이 끝난 게 아닌 것처럼, 지금의 동묘 벼룩시장은 숨고르기를 하며 조심스레 영역을 넓히는 들짐승 같다. 젊은이들에게 홍대와 가로수 길과 통의동이 있는 것처럼, 어르신들에게 동묘는 또 다른 파고다 공원이자 종로3가이다. 수년 째 주말마다 나와 물건을 파는 할아버지에게 빈티지 디올 클러치를 살 수 있고, '나이스'라는, 명백한 나이키 패러디의 고무신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일용직 노동자들에겐 천 원짜리 작업복을, 살뜰한 아주머니들에겐 가족 입힐 옷가지를,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젊은이들에겐 알록달록한 빈티지 옷과 액세서리와 인테리어 소품을 선사한다. 드물게 보이던 젊은이들이 부쩍 많아진 요즘엔 혼자만 알던 비밀을 남에게 들킨 기분도 들지만 '재활용(리사이클)'을 공유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청계천이 복원된 후, 동묘에서 뻗어 나와 고가도로 옆에서 수십 년 째 장사하시던 할아버지들은 다신 볼 수 없다. 서울시에서 정한 구역으로 이사하고, 또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그리고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동묘 '순희네 빈대떡' 집 위에 조용히 있는 다방은, 수십 년 전 주먹깨나 썼다는 할아버지들의 아지트라고 책방 주인아저씨가 지나가는 말을 했다. 그 다방에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개를 하늘 높이 들어야 끝이 보이는 주상복합 건물이 있다. 사라지는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혼란스럽게 섞인 모습. 동묘는 말끔하지 않은 것들이 옹기종기 모이고, 불협화음의 하모니를 이루는 도시의 특징이 온전히 녹아 있다. 청계천 남단까지 온 커플과 관광객들 건너로, 3천 원짜리 막걸리에 낮부터 술집 주인과 실랑이하는 벌건 얼굴의 아저씨 머리 위로, 보물 142호와 주상복합아파트와 먹어도 괜찮을까 수상한 중국 식료품을 함께 파는 상가를 둘러싼, 아직은 개발의 광풍이 휘몰아치지 않은 동네 벼룩시장. 내가 아저씨가 된 후에도 이곳은 계속되리라고, 믿고 싶다.

www.arena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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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옴므플러스코리아 Arena Homme Plus Korea 2010년 4월호에 실린 글이자 '하루의 글방'을 위해 쓴 글. 잡지에 편집되어 들어가지 않은 원본이다. 아직 잡지에 실린 글은 보지 못했다.

This essay is article for both of two that April 2010 issue of Arena Homme+ Korea and workshop for 'The writing school in one day' by your-mind.com.
 




written by Hong Sukwoo (yourboyhood@gmail.com)
fashion journalist and photographer of yourboyhood.com, and essayist.

Comments

  1. 오랜만에 와봤는데 이 글 진짜 좋네요 ㅎㅎ 전 동묘 2007년쯤에 2번밖에 안가봤지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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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아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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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고등학교 시절, 쌈지돈을 가지고 동묘 근처에 서성이며 빈티지 선글라스나 헌 스웨터 등을 샀던 기억이 나네요. 날이 따뜻해지면 보이프렌드 자켓이나 하나 장만할 겸 오랜만에 한번 가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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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고등학교 시절, 쌈지돈을 가지고 동묘 근처에 서성이며 빈티지 선글라스나 헌 스웨터 등을 샀던 기억이 나네요. 날이 따뜻해지면 보이프렌드 자켓이나 하나 장만할 겸 오랜만에 한번 가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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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고등학교 시절 쌈지돈으로 빈티지 선글라스나 헌 스웨터 등을 샀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당시에 동묘 벼룩시장은 저에게도 천국이었는데 ㅎ 날씨 좀 풀리면 보이프렌드 자켓 장만할 겸, 오랫만에 한번 가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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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정확히 지금 저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지라 매우 공감하며 살짝 코멘트 달아봅니다. 이십대 중반에 외국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빈티지를 통해서 뒤늦게 정체성(?)을 찾는 격동의 세월을 보내고 있거든요. 거창한 목적은 없었는데 빠지다보니 소유나 치장의 즐거움을 넘어서 어떤 하나의 문화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더라고요. 세상과 연결되는 또 다른 고리가 생긴거겠지요.
    애정이 담긴 공감가는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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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잘 읽고 갑니다.
    저는 부산에 있는데, 남포동 구제시장의 모습과 닮았을거라 생각하며 읽었어요. 검은 비닐 봉다리(봉지)와 비싼 6천원에서 아 그곳도 여기랑 비슷하겠구나 싶었어요. 남포동엔 일본 물건이 많고, 역시 세탁소나 헌옷함이 주요 출처인가봐요. 아니면 일본 used 샵에서 팔던 걸 tag 그대로 다시 여기서 만나기도 하구요.
    친구가 알려준 거대한 옷더미들은 저 역시도 흥분 시켰고 옷장을 가득 채우게 했죠. 안간지 오래 되어 한번 가야하는데 생각하던 차에, 글만으로도 천원짜리 보물 옷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 글 읽은 참에 장마 끝나면 당장 달려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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