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 October 07, 2010 _ 대화의 저력을 느낀 아침이었다

직사각형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는 술자리는 옹기종기 모인 몇 가지 대화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른다. 가능하면 좁게, 안 되면 둥글게라도 앉아 술을 마실 수 있으면 좋은데. 사람이 많아지면 짧고 금세 타버리는 대화만 늘어나니까 직사각형 테이블에서 먹는 술자리와 그 안의 대화를 좋아하진 않는다.

어느 날은 술을 마시고 싶다. 마시고 나면, 다음 날 몸과 기분이 찌뿌드드하고 영 기운을 못 차릴 때가 늘어난다. 하루를 맞이하는 발동이 늦게 걸리는 기분이다. 막 들어가는 '처음처럼'의 양을 좀 줄여야 할까. 안 좋은 술버릇이 있는데, 술 마시고 집에 가면 뭐를 먹게 된다. 다음날 일어나면 그건 무의식이었고 더부룩한 속도 좋지 않다. 요즘은 술 마시고 나면 달콤한 게 당긴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사람은 역시 변하나봐. 하긴 스무 살 때는, '남색(네이비)' 바지를 다시는 입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절대로.

미스터 스콧 스턴버그는, 짧은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예전 바이어 일할 때의 메일 주소를 찾아내어 그를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가 내 블로그를 알고 있던 것은 좀 신기했다.

한상혁 실장님과는, 곧 열릴 컬렉션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신문 기재용 칼럼에 들어갈 짧은 인터뷰를 했다. 그는 몇 개의 옷 - 매킨토시 스타일의 회색 코트와 울 조끼와 흰색 옥스포드 셔츠 - 을 겹쳐 입었고, 나는, 나를 유심히 아는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티셔츠에 재킷 하나만 달랑 입었다.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Maison Martin Margiela의 M-65 변형 재킷과 아워 레가시 Our Legacy의 회색 주머니 티셔츠. 재킷은 사십팔, 티셔츠는 오십 사이즈. 특히 티셔츠가 무척 마음에 드는데, 이런 밋밋하고 디자이너의 손길이 과하지 않게 들어간 기본 티셔츠들을 한두 개 더 사고 싶다. 유니클로 UNIQLO나 에이치엔엠 H&M이 줄 수 없는 느낌.

노래를 정열적으로 찾아 듣는 타입이 아니라서 듣는 것들만 듣는데 어떤 아침에는 가사가 들리는 노래 따위, 듣기 싫어진다. 그럴 때는 아이튠즈 포드캐스트의 위스퍼링 라디오를 듣는다. 클래식 피아노곡만 나오는 유익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다. 피아노 연주도 물릴 때에는 포드캐스트에 있는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을 듣는다. 사랑 노래를 부를 때와는 다른, 퉁퉁 던지는 그의 유머 감각을 음악만큼 좋아한다.

압박이랄까 부담이랄까. 나를 짓누르는 마음이 지나고서야 어떤 일은 끝이 났고, 스스로 조금 자랐다고 느꼈다. 좋게 끝난 일만큼, 나쁘게 끝난 일, 사실은 뒤돌아 보기 싫은 일들이 나를 자라게 했다.

아침에 나눈 대화의 결론은 그래도 지금 나, 행복하지 않은가, 였다.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하고, 돈을 너무나 풍족하게 벌진 않지만 살아가고 있다.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다. 일은 힘들고 삶은 더 힘들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기준은 스스로 정하는 거라는 말, 판에 박힌 말 같지만 맞다. 나는 안 좋은 것들만큼 좋은 것들을 보겠다. 대화의 저력을 느낀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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