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 November 22, 2010 - tue, November 23, 2010
월요일에는 한겨레신문 원고를 넘기고, 계동을 지나 가회동을 걷고, 브로콜리너마저 2집과 가을방학의 첫 번째 앨범을 사고, 간장게장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먹어보고(음식점에서 대충 반찬으로 나온 것 말고), 애장판으로 나온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책과 디트로이트메탈시티 9권을 샀다. 화요일에는 오전에 보그 코리아 신광호 차장님의 트위터를 보고는 안 입는 옷들 - 정확히는 벼룩시장에서도 남았던 - 을 주섬주섬 챙기고 광고 촬영 중 분실한 듯한 옷 찾느라 온 집안을 뒤지다 수습 안 되는 책상 정리까지 하곤 대형할인점의 대형 비닐봉지 두 개 가득 채운 옷 담아 들고 늦게 나섰는데, 나서기 전까지 그래도 기분이 잔잔하니 좋았던 것은 브로콜리너마저와 가을방학의 음악 덕분이었는데, 하도 오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다 켜본 트위터 맨 윗줄에 브라운브레스 서인재 사장님의 멘션 보고, '아 뭔가 일어났구나' 싶어 뉴스를 보니, 웬일인가. 갑자기 융단투하라니.
옷은 잘 전달했고, 열심히 보그에서 일하는 누리 씨랑도 잠시 얘기 나누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그러나 아직도 친해지진 않은,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유준이 친했으니까 분명히 좋은 사람일 거라 생각하는) 주가은 기자님과도 오랜만에 인사하고, 광호 차장님 따라 보그 사무실에 올라가자마자 머리칼을 갈색으로 염색하고 짧게 자른 장윤주 씨와 마주쳤다. 여전히 콧바람이 들어간 듯한 목소리로, 어서 봐야죠 12월 가기 전에, 그래서 12월 초에 꼭 차 마시자고 했다. 여기서 만날 줄이야. 사무실에서 잠시 얘기 나누곤 보그와 더블유 12월호를 받고 내려와서는 디아프바인에 갔다. 결국 분실한 것은 못 찾았지만 가격을 좀 깎아주셔서 지불. 마음에 들어 카메라 옆에 달아 놓았던, 미국 국기를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단조롭게 표현한 크루 KR3W의 태그를 디아프바인 디자이너 인성 씨에게 주고, 그가 진심으로 기뻐해서 괜히 기분 좋았지만, 애매하게 시간이 남았다. 25일까지 써야 하는 베네통 상품권을 쓰자, 싶어 갤러리아백화점에 갔더니 마침 정기휴일. 이런 장날. 이레서적 앞을 빙 돌아 어딜 가볼까, 하다가 아, 반납 안 한 옷이 하나 있구나, 하고 광고대행사에 직행. 남은 옷 하나 주고(끝), 내려와서는 페이퍼가든 홀에 오랜만에 들렀다. 격자무늬의 꼼데갸르송 파우치는 예쁘지만 비싸다. 그리고 아마 산다고 해도 여자들처럼 들고 다닐 일은 없겠지. 너무 작으니까. 세일이 이어지고 있던데 토크/서비스의 옷은 예뻤고, 여자라면 사고 싶은 몇 가지가 있었고, 어디선가 발렌시아가의 냄새가 조금 나긴 했다. 유진이는 힐을 신으면 키가 크고 얼굴은 예전보다 좋아 보였지만 여전히 나를 막 대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란 걸 느꼈다. 아이폰 4는 샀는데 트위터도 블로그도 페이스북도 안 하는 아날로그녀.
택시를 타고 광나루역까지 가는 길에, 퇴근길임에도 생각보다 덜 막혔고 뉴스는 연평도 얘길 이어갔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입장을 발표하기 직전이었다. 왠지 잠이 밀려들어선, 한쪽 팔에 배낭을 걸친 불편한 자세로 잠깐 졸았다. 광나루역에 내려, 홍미를 만났다. 주머니 속 진동이 울려서 보니 꽤 오래 만나지 못한 성현이 형. 광화문 쪽이라 한 번 전화해봤다고. 여긴 강변 근처인데. 걸어갈까 하다가 택시를 타고, 기본료에 백 원 더 한 금액을 내고 내려서, 테크노마트 꼭대기에 있는 강변 CGV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봤다. 영화를 보기 전 두산빌딩 앞에 나를 배웅해준 누리 씨와 잠깐 근황 얘길 하다 '소셜 네트워크' 재밌다며,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고 보면 더 재밌다, 고 했는데 안 그래도 이 영화를 볼 예정이었다. 보고 싶었던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이미 막 내린 것 같았으니까.
이 영화는, 뭐랄까. 정말 재미있게 봤고 극장을 나오면서 스스로 '지난 3년간 본 영화 중 제일 재밌었다' 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아마 나처럼 '웹'에 한 발을 걸치고 뭔가를 하는 사람들에겐 많은 시사점이 있었을 것이다. 누구는 영화의 스타일을 보고, 누군 줄거리를 보고, 누군 영상을 본다면 나는 이 영화가 허구든 실화든 데이빗 핀쳐가 할리우드의 상업 영화 사주를 받고 웰-메이드로 만든 영화이든 어쨌든, '웹'을 기반으로 무언가 이뤄낸, 그 이뤄낸 것은 사람들이 생각해봄 직한 것이지만 아직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이란 점에서 감명 받았다. 그래. 감명, 받았다. 감명. 감동하고 아아, 훌륭해 멋져 대단해, 한 건 아니고, 아아, 젠장 나도 저런 뭔가를 어서 생각해내고 싶다, 하는, 약간 의욕적으로 더 살아야겠다는 마음이랄까.
커다란 다리 위를 올라갔다가 내려가선 한강 산책길을 걸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왔다. 집에 가는 길에는 당연하게도 별다른 일이 없었지만 택시를 타기 전, 샛노란 가로등불빛을 받은 잘 정리된 은행나뭇잎들을 거인의 손가락으로 두 번, 긁어낸 듯한 모양의 낙엽 더미들이 약간 신경 쓰였다. 요즘 택시 기사분들은 확실히 내가 어릴 때보다 길을 모르신다. 뉴스를 보니 '터치 제너레이션'이라는, 터치스크린에 익숙해진 세대의 학습능력 저하를 우려하던데 꼭 요즘 초·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 얘기만은 아니지 싶다. 나도 외우는 휴대전화 번호가, 만나는 사람 대비 기억하는 얼굴과 이름의 사람이, 대체 몇 명인지.
소셜 네트워크라고 쓰고 페이스북이라 읽는 영화를 보기 전, 대기업 CJ의 영화관이라 그런지 광고가 엄청 나왔는데, 이효리가 전기밥솥 선전을 하며 한 번 밥 먹자, 고 줄곧 말했다. 나도 한 번 밥 먹자, 한 번 갈게, 한 번 보자, 고 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12월이 가기 전에 다 해치워야지, 싶지만 그러지 못하겠지. 항상 여러 일이 시트콤처럼 터지게 마련이니까. 문득 죽은 친구의 기일이 떠올랐다. 12월이 가기 전에, 라는 생각을 하는 나에게 놀랐다. 올해가 지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빠르게 지나는 시간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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