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 November 22, 2010

한 번 정한 것을 잘 바꾸진 않는다. 무인양품의 볼펜을 사기 위해 예정에 없던 명동 영플라자에 들러선 몇 개나 사곤 했다. 그럴 땐 보통 볼펜 들고 나오길 깜빡한 날이었다.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일정은 아침 일곱 시 반부터 시작되었다. 홍대 놀이터 옆의 슈퍼마켓처럼 생겨선 편의점 가격 꼬박 받는 가게에 들어가 불량품인 걸 한 번 교환하고서야 산, 육백 원짜리 삼색볼펜이었다. 젤 타입 잉크가 아닌 볼펜을 즐겨 쓰진 않지만, 이 볼펜은 가격에 비해 필기감이 좋았다. 천오백 원 짜리가 육백 원 짜리 보다 항상 훌륭하지도 않고, 이백만 원 짜리가 십만 원 짜리에 비해 이십 배의 기쁨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가끔 이렇게 우연이 삶에 끼어든다. 무명씨에 가까운 볼펜을 다시 살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어떤 우연은 나중에 보았을 때 우연이 아니었다고 느낀다. 그런 우연 중 몇 가지는, 삶에 있어 꽤 중요한 선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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