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October 31, 2010 _ stationery
'인터넷 쇼핑몰'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에는 이런 얘기를 종종 나눴다. "그래도 옷은 입어보고 사야지." 물론 지금도 그런 사람, 많겠지만 사실 나는 닷컴 버블 이후의 인터넷 세대에 속하기에, 인터넷으로 옷 사는 게 어색하지 않다. 사이즈 실패라든지 사기(국외 입금 후 판매자가 배송하지 않음) 등의 경험도 있지만 요새도 드물게 샀다. 그렇지만 내가 사는 곳은 거의 한정적이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이베이 eBay 하나뿐. 종종 이용하던 외국 편집매장들에 눈길이 덜 가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옷을 살 수 있는 곳이 늘었기 때문이리라(세일 만세). 옷 외의 것들은,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대부분 웹 공간 밖에서 산다. 봄에 새로운 카메라를 산 것도 압구정동의 매장이었고 새로운 랩탑을 산 것은 학생 할인 적용 때문에 웹으로 사려고 했으나 워낙 까다로워서 포기하고, 전화 상담으로 샀다(전화 만세).
옷 외에 기쁨을 주는 쇼핑은, 요즘은 작은 액세서리들, 그리고 문구류이다. 어제는 벨엔누보 Bell&Nouveau의 50% 세일 행사에 우연히 갔다가 폴로 Polo Ralph Lauren과 럭비 Rugby 라인의 양말을 두 개 샀고, 금요일에는 한 달 전에 주문한 슬립워커 SLWK.의 키트 백을 샀다. 얼마 전부터 한남동의 서점 포스트 포에틱스(포포) post poetics에서는 홍대 쪽의 디자인 문구점 오벌 Oval과 함께 한 팝업스토어(반짝가게) pop-up store를 열고 있다.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오벌의 아이템들을 워낙 좋아하기에 포포의 팝업스토어 또한 기대한다. 2주 전, 주말만 문 여는 오벌에 거의 2년 만에 방문해서 지금 잘 쓰고 있는, 일본 카우북스 Cow Books에서 샀던 한정판 공책의 새로운 버전과 합성수지로 나무 질감을 재현한 보충(리필)형 만년필을 샀다. 그 두 개 사는데 워낙 침을 질질 흘리며(물론 진짜 흘린 건 아니지만 조금 나왔을지도) 로봇 장난감 보는 소년처럼 헤벌쭉해서 직원분도 어이없으셨을 거다. 사실 그날, 좀처럼 가라앉은 기분이 가시질 않았는데 '물질의 힘'으로 좀 좋아졌었지.
'언젠가는 문구점을 하고 싶습니다!'까진 아니더라도, 언젠가 무언가를 큐레이팅, 혹은 감독할 수 있는 기회, 아니 그런 것에 참여할 기회가 생기면 패션에다가 문구류의 퓨전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 참 재밌을 것 같은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노트를 어떻게 하면 가방 없이 들고 다닐 수 있을까 궁리한다. 진지하게 다음에는 슬립워커에서 코트를 맞추고 그 안에 내가 자주 쓰는 노트와 펜을 꼭 맞게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해볼 참이다(SLWK. 만세).
일요일 저녁이 되니, 그나마 다양한 문구류를 볼 수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매장인 교보문고의 일요일 저녁이 생각난다. 평일보다 사람이 적은 문 닫을 시간대의 교보문고는, 그 바글거리는 사람들이 뜻밖에 적고 평온해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충동적으로 무언가 사기에 딱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덕분에 나도 마지막 방문 때는 - 일요일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느낌의 평일이었다 - 린코 가와우치 Rinko Kawauchi의 사진집을 샀다. 이제 해는 여섯 시 반이 되기 전 다 진다.
이쯤에서 한 번, 문구도 만세.
추신. 팝업스토어를 온라인한국어맞춤법/문법검사기에 돌리니 '반짝가게'라고 번역했다. 반짝가게 괜찮네.
이글은 누가올리신건가요? 글을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작성자도 만세.
ReplyDeleteAnonymous/ writing의 모든 글은 제가 쓴 일기, 혹은 에세이입니다.
ReplyDeleteall 'writing' articles written by Hong Sukwoo, as known as yourboyh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