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alm afternoon _ mon, November 24, 2014

일요일에 회사 가는 혜진이가 택시 타는 걸 배웅하고 오랜만에 종로2가 중고서점에 들렀다. 일요일 오후, 구름 낀 하늘은 탁했지만 지하에는 책을 보고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땅한 책을 고르기에는 너무 많은 책이 있어서 서점에 가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렇게 잘 정리되어 있는데도. 몇 권을 집었다가 펼쳤다가 눈길 간 곳은 새로 들어온 어느 철학자의 수필집이었다. 프랑스 사람이 지은 시리즈인데, 제목도 저자도 금세 잊었지만 무언가 '원한다'는 말이 제법 맴돌았다. 바로 전까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살다 보면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사소한 것부터 꽤 큰일까지.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 중 긍정적인 축에 드는 단어임이 분명하지만, 용기가 꼭 올바른 방향으로, 아니면 옳은 길로 귀결되진 않았다는 걸 얼마 되지 않은 경험치로 터득하기도 했다. 어느 행동에 앞서 머릿속으로 무수하게 상상할 때, 그 실현 단계까지 가는 한두 발짝을 딛는 게 어찌나 스트레스로 다가오던지,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막상 겪으면 별거 아닌 경험으로 잊게 되어도, 비슷한 일을 엇비슷하게 갈등하는 것은 사람의 천성이려나.

늦은 점심을 먹고 부른 배를 소화하기도 전에 버스를 타자마자 졸았다. 겨울 초입인데도 따뜻해서 거북목 터틀넥 스웨터와 양모 wool 코트와 모자 사이로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몇 번인가 깼다. 결국, 한 정거장 지났고 덕분에 덕수궁 주변을 산책할 수 있었다. 덕수궁 대문을 지나 시청 별관 주변에 들어서니 올봄 무슨 심사위원에 위촉되어 서둘러 들어가다가 이 건물 로비에서 처음 세월호 속보를 목격한 일이 떠올랐다. 정보의 혼선으로 실종자의 숫자가 아직 뒤바뀌기 전이었다. 모두가 쓰린 기억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후문 돌담길도 생각하니 처음 걸어보았다. 돌기둥 네 개가 삼각 지붕을 받친 구세군중앙회관 건물이 돌담 안에 늘어선 노란 은행나무와 바닥에 소복이 쌓인 낙엽과 잘 어울렸다. 모두가 웅성대는 서울 속 뜻밖의 조용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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