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만 책들 _ mon, Feburary 23, 2015

아침에는 뛰었고, 낮에는 착실하게 책상 앞에 앉아있고 싶었지만, 부산스럽게 다니며 할 일이 많았다.
머리를 잘랐다. 거의 한 달 만에.
휴대전화 명의 변경과 엄마 스마트폰 교체 등을 하려고 했으나 여섯 시 오 분에 도착한 KT 대리점에서는 '여섯 시까지'라고.
그래서 장을 봤다. 샤부샤부 - 지금까지 '샤브샤브'가 표준어인 줄 알았다 - 를 해먹기로 하고 배추부터 버섯까지 이런저런 채소를 샀다.
뉴타운 끄트머리에 붙은 동네 재래시장은 옛날 같다. 물건이 텅텅 빈 그 마트는 이번 주에 문을 닫는다. 3만 원 넘게 사면 배달 가능.
마트 입구 오른쪽 끝에 동전을 넣으면 움직일 것만 같은 장난감 오리가 있다.
황사 낀 저녁과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이, 갈라진 나무 속살이 벗겨진 페인트 아래 드러났는데도 오래된 눈동자가 꽤 선명했다.
집에 있으면 의식적으로 설거지는 하자고 다짐한다.
요리 준비는 내가 했다.
오곡 소스는 실패였다. 느끼해.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는 책상 - 집의 책상이 책상으로 기능하지 않게 된 것은, 집에서 일하지 않게 된 후 지금까지 이어진다 - 을 마음먹고 조금 쑤셔보았다.
몇 년 전 흔적들 사이에서 버릴 종이들을 모으고, 현상하지 않은 필름들을 비닐봉지에 넣고 냉장고에 일단, 넣어두었다.
쓰지 않은 공책과 쓰다 만 공책, 예전 거리 패션 사진을 찍고 휘갈겨 적은 옷 정보와 이름 따위가 널렸다.
읽다 만 책들. 문고판 책들. 심지어 지갑들, 모자들, 가방들, 그리고 잡지들.
아침에 그러고 보니 문득 생각했다. '무언가 더 사지 않아도 사실 괜찮지 않을까.'
올겨울 염원한 '낙타 색 얇은 코트'는 그러고 보니 결국 못 샀다. 물론 사지 않았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모하여 사라지지 않는 종류의 물건이 집에 너무 많았다.
혜진이 전화를 받다가, <아키팁 Arkitip> 44호 부록인 '만화경'이 든 상자를 봤다. 2008년이 생각났다.
스 트레스받는 몇 가지의 결론을 사실 연휴 때 내려고 했다. 그러나 빨간 닷새가 보통의 이틀처럼 지났다. 아직 정리가 잘 안 되고, 좀 피하고 싶은 그런 감정이다. 순서가 조금 잘못되었고, 그저 넘기려고 했으나 사실 참 무례하였고, 좀 낙담했다. 누구를 위해 열심히 해야 하나 싶었다. 상담한 몇 명의 친구에게 모두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뭐가 되었든지 정해야 할 텐데. 아침에 뛰면서, 아니 뛰고서, 그래도 '하고 싶은 종류의 일을 하니까 즐거운 것'이라고 자기 세뇌했는데 말이지.
티브이에서 <로앤오더 Law & Order season 20>이 나오는데, 범인처럼 보이는 조연이 한마디 한다. 'Are you kidding me?' 좋아하는 외화다. 적당히 예스럽고, 적당히 차분하고, 수사관들이 과도하게 멋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밤 열한 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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