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_ wed, April 22 - mon, May 04, 2015
wed, April 22, 2015
집을 나설 때 재킷도 어제보다 한 꺼풀 얇게 입었다. 엠포리오 아르마니 Emporio Armani의 쥐색 점선 무늬 핀스트라이프 재킷. 일교차는 심한 편이라 브룩스 브라더스 Brooks Brothers 줄무늬 셔츠에 남색 작은 물방울무늬 타이를 매고, 진한 파란색 얇은 코스 Cos 스 웨터를 입었다. 4월 하순인데 예년보다 온전한 봄이다. 심한 일교차에 미세먼지가 많아도 계절이 이름에 오롯이 어울리는 것은 반갑 다. 음미하는 동안 얇은 재킷도 곧 벗을 때가 눈 깜빡할 새 올 거란 걸 안다. 새삼 사계절이 한 번 지나고 또 반복하는 지금 이 빠르게 바뀌었다는 걸 깨닫는다.
일은 말하자면 예열 단계다. 생각보다 조금 늦어졌는데, 새로운 나라의 모르는 사 람들에게 서서히 다가서는 기분으로 한다. 몇 개의 길고 짧은 원고를 썼고 어느 신문 기사용 의견도 냈다(그러나 두 번째로 내게 물 었을 때, 그는 전문가의 의견을 물었다기보단 자신이 앞으로 쓸 글의 주제를 잡아달라는 식으로 들려서 나는 더는 그의 질문에 답하 지 않겠노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루가 빠르게 지난다. 그 시간이 모여 일주일도 빠르게 간다. 별반 괜찮은 흐름에, 연초의 다짐 들이 흐트러지기 딱 좋은 시기다. 그러지 않도록 되뇌었지만 사실 혼자 헛웃음도 나왔다.
mon, May 04, 2015
4월 하순까지 제 역할을 톡톡히 한 푸른 스웨터는 역시 5월의 문턱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신 남들이 조금 더워졌다고 - 그새 를 못 참고 - 반소매 티셔츠의 구멍을 목에 욱여넣을 때 작년인가 사둔 더 얇은 스웨터를 며칠 오기로 입었다. 낮 기온이 28도 에 육박하였다면서 이른 고온으로 다시 사람들이 봄의 짧은 생을 한탄하기 전까지, 마와 면이 6대 4 정도 비율로 섞인 스웨터를 입 고, 그 위에 조금 여름 느낌의 재킷을 입었다. 같은 손수건과 만년필도 며칠째 가슴주머니에 채웠다.
일요일에 비가 내 리고 월요일 오전 여덟 시에 땅을 밟으니 빗물이 움푹 여러 곳 고여 있었다. 바람이 선선해서 오전에 달리니 기분 좋았다. 대신 철 없이 멈출 줄 모르고 종일 불었다. 줄무늬 셔츠에 맨 브랜드 없는 남색 타이를 남훈 대표님 가게에서 산 윤기 없는 금속 타이바 tie bar로 고 정했다. 바람은 불어도, 기온이 조금 내려가도 땀은 흘렀고 마와 면이 섞인 손수건은 그래서 꼭 필요했고, 또 쨍한 햇볕에 잘 말랐 다. 빳빳한 면을 네모나게 접어 손에 쥔 감각을 예전부터 좋아했다. 오전에 원 없이 달리고, 오후까지 냉커피를 두어 잔 마셨 고, 7월에 열릴 어느 전시 서문 작업에 관해 미팅하였고, 그 자리에서 목적과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내가 처음 만 든 인터넷 커뮤니티의 이름이기도 하였다, 그 대화 주제는.
남들과 가끔 만나서 정말로 자주 보지 않는 이들이 어떻 게 살아가는지 종종 알곤 한다. 나는 어느 정도 변두리에서 조용히 내가 할, 혹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 좋다. 그 어 느, 어느 무엇인가에 속했다고 느끼거나 '비교'의 '비교'를 거치며 남들의 삶에 아파하는 모순을 여전히 바라보면 좀 측은하다. 멋 진 장신구, 희귀한 아이템, 반짝거리고 밤에 더 빛나는 무언가들. 그것들이 어릴 때부터 어색하였다. 최근 1년 반 동안 감사한 것 은 내게 이러한 부분들, 그러니까 크게 질린 그들과 다른 좀 더 일반적이나 좀 더 건강한 행복을 깨닫게 해준 사람과 사람들이었다.
괜찮다면 그리 술독에 빠지지 않고, '일'과 일상의 조금 판에 박힌 시간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는 길이 좋다. 애써 어떤 기류를 이끌 고자 발버둥 치거나, 기류에 몸을 싣고자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 삶. 술자리라든지 푸념 섞인 대화에서, 혹은 타의와 자의가 반쯤 섞 인 무의미한 스마트폰 위의 손가락 움직임에서 보기만, 하는 행동들이 주는 그 동떨어짐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이십 대 때, 너 무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어쩌고저쩌고, 하던 어른들이 내게는 꼰대처럼 보였다. 속으로는 당돌하고 별로 되먹잖은 꼬맹이라 인연 이 오늘까지 이어지지도 않았다. 단지 그때 충고 비슷한 것들을 이제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여전히 가장 큰 동기는 무언가 재미있 다고 생각하는 것들이고 그것들을 하나씩 생각한다. 목적, 목표에 관해 어느 정도 협의한 친구들도 속내는 이전보다 많이 달라졌다 는 것도 안다. 그래도 그 별로라고 생각한 것들을 그때 별로라고 해서 다행이었다.
집을 나설 때 재킷도 어제보다 한 꺼풀 얇게 입었다. 엠포리오 아르마니 Emporio Armani의 쥐색 점선 무늬 핀스트라이프 재킷. 일교차는 심한 편이라 브룩스 브라더스 Brooks Brothers 줄무늬 셔츠에 남색 작은 물방울무늬 타이를 매고, 진한 파란색 얇은 코스 Cos 스 웨터를 입었다. 4월 하순인데 예년보다 온전한 봄이다. 심한 일교차에 미세먼지가 많아도 계절이 이름에 오롯이 어울리는 것은 반갑 다. 음미하는 동안 얇은 재킷도 곧 벗을 때가 눈 깜빡할 새 올 거란 걸 안다. 새삼 사계절이 한 번 지나고 또 반복하는 지금 이 빠르게 바뀌었다는 걸 깨닫는다.
일은 말하자면 예열 단계다. 생각보다 조금 늦어졌는데, 새로운 나라의 모르는 사 람들에게 서서히 다가서는 기분으로 한다. 몇 개의 길고 짧은 원고를 썼고 어느 신문 기사용 의견도 냈다(그러나 두 번째로 내게 물 었을 때, 그는 전문가의 의견을 물었다기보단 자신이 앞으로 쓸 글의 주제를 잡아달라는 식으로 들려서 나는 더는 그의 질문에 답하 지 않겠노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루가 빠르게 지난다. 그 시간이 모여 일주일도 빠르게 간다. 별반 괜찮은 흐름에, 연초의 다짐 들이 흐트러지기 딱 좋은 시기다. 그러지 않도록 되뇌었지만 사실 혼자 헛웃음도 나왔다.
mon, May 04, 2015
4월 하순까지 제 역할을 톡톡히 한 푸른 스웨터는 역시 5월의 문턱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신 남들이 조금 더워졌다고 - 그새 를 못 참고 - 반소매 티셔츠의 구멍을 목에 욱여넣을 때 작년인가 사둔 더 얇은 스웨터를 며칠 오기로 입었다. 낮 기온이 28도 에 육박하였다면서 이른 고온으로 다시 사람들이 봄의 짧은 생을 한탄하기 전까지, 마와 면이 6대 4 정도 비율로 섞인 스웨터를 입 고, 그 위에 조금 여름 느낌의 재킷을 입었다. 같은 손수건과 만년필도 며칠째 가슴주머니에 채웠다.
일요일에 비가 내 리고 월요일 오전 여덟 시에 땅을 밟으니 빗물이 움푹 여러 곳 고여 있었다. 바람이 선선해서 오전에 달리니 기분 좋았다. 대신 철 없이 멈출 줄 모르고 종일 불었다. 줄무늬 셔츠에 맨 브랜드 없는 남색 타이를 남훈 대표님 가게에서 산 윤기 없는 금속 타이바 tie bar로 고 정했다. 바람은 불어도, 기온이 조금 내려가도 땀은 흘렀고 마와 면이 섞인 손수건은 그래서 꼭 필요했고, 또 쨍한 햇볕에 잘 말랐 다. 빳빳한 면을 네모나게 접어 손에 쥔 감각을 예전부터 좋아했다. 오전에 원 없이 달리고, 오후까지 냉커피를 두어 잔 마셨 고, 7월에 열릴 어느 전시 서문 작업에 관해 미팅하였고, 그 자리에서 목적과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내가 처음 만 든 인터넷 커뮤니티의 이름이기도 하였다, 그 대화 주제는.
남들과 가끔 만나서 정말로 자주 보지 않는 이들이 어떻 게 살아가는지 종종 알곤 한다. 나는 어느 정도 변두리에서 조용히 내가 할, 혹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 좋다. 그 어 느, 어느 무엇인가에 속했다고 느끼거나 '비교'의 '비교'를 거치며 남들의 삶에 아파하는 모순을 여전히 바라보면 좀 측은하다. 멋 진 장신구, 희귀한 아이템, 반짝거리고 밤에 더 빛나는 무언가들. 그것들이 어릴 때부터 어색하였다. 최근 1년 반 동안 감사한 것 은 내게 이러한 부분들, 그러니까 크게 질린 그들과 다른 좀 더 일반적이나 좀 더 건강한 행복을 깨닫게 해준 사람과 사람들이었다.
괜찮다면 그리 술독에 빠지지 않고, '일'과 일상의 조금 판에 박힌 시간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는 길이 좋다. 애써 어떤 기류를 이끌 고자 발버둥 치거나, 기류에 몸을 싣고자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 삶. 술자리라든지 푸념 섞인 대화에서, 혹은 타의와 자의가 반쯤 섞 인 무의미한 스마트폰 위의 손가락 움직임에서 보기만, 하는 행동들이 주는 그 동떨어짐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이십 대 때, 너 무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어쩌고저쩌고, 하던 어른들이 내게는 꼰대처럼 보였다. 속으로는 당돌하고 별로 되먹잖은 꼬맹이라 인연 이 오늘까지 이어지지도 않았다. 단지 그때 충고 비슷한 것들을 이제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여전히 가장 큰 동기는 무언가 재미있 다고 생각하는 것들이고 그것들을 하나씩 생각한다. 목적, 목표에 관해 어느 정도 협의한 친구들도 속내는 이전보다 많이 달라졌다 는 것도 안다. 그래도 그 별로라고 생각한 것들을 그때 별로라고 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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