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ments and Objects N° 01 — Polo Ralph Lauren, Striped Shirt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 사소한 다짐들을 번복할 때가 많아진다. 

스무 살 때 나는 '폴로 랄프 로렌 Polo Ralph Lauren'이라는 브랜드를 평생 쳐다보지도 않을 줄 알았다. 모든 색상의 스웨트셔츠와 남색과 베이지색 면바지 역시 옷장에서 사라져버릴 아이템이 될 줄 알았다(1990년대와 2000년대 강남에서 초중고교를 다닌 남학생의 시각에서, 특히).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모양은 대체로 엇비슷하고 색도 크게 구분 없는 옷들만이 옷장 가득 넘칠 만큼 채워져 있다. 일부는 버렸으나 일부는 아직 향수가 남아 손 닿지 않는 깊숙한 집안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고, 일부는 오래 닳도록 입어 실제로 소맷단에 풀린 실밥이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빈티지로 산 폴로 랄프 로렌의 커스텀 핏 유러피언 스타일 줄무늬 셔츠 Men's Custom-Fit European Style Striped Shirt는 사실 셔츠의 기본을 논하는 규칙으로 마주하면 그리 올바른 선택은 아니었다. 

기장은 너무 길고 품도 조금 크다. 그러나 무인양품 MUJI의 상아색 터틀넥 스웨터 아래,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Maison Martin Margiela의 큰 치수 블레이저 안에, 낡은 라프 시몬스 Raf Simons 살구색 후드 파카 안에 무얼 입을까 고민하면 버릇처럼 이 옷을 고르곤 한다. 

어릴 때부터 크게 입던 버릇이 한때 가셨으나 다시 돌아온 탓일까. 결코 '멋지다'라고 할 수는 없는 옷이지만, 토요일 오후 집에 혼자 있을 때 셔츠에 반사된 햇살이 마음에 들어 사진을 찍어보았다. 공기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 종종 잊어버리는 호감이 이 셔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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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과 물건들 Garments and Objects'이라는 제목으로 좋아하는 의복과 장신구들에 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십수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쳐 간 옷과 장신구 중 선별한 모음입니다. 

이제는 옷장에 틀어박혀 있는 무언가를 다시 끄집어낼 수도, 최근 친애해 마지 않는 장신구나 스니커즈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무척 개인적인 물건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이 이 기록을 보며 슬며시 미소 짓거나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값비싼 소유의 과시가 아닌, 편한 친구의 옷장 혹은 작업실처럼 느껴진다면 좋겠습니다.

<옷과 물건들>, 즉 '가먼츠 앤 오브젝츠'는 2017년 1년간 틈틈이 써 내려갈 예정이며 모두 100가지를 모으면 문고판 책으로 출판하고 싶은 계획도 있습니다. 

그 첫 번째, 폴로 랄프 로렌의 줄무늬 셔츠입니다.

문의. yourboyhood@gmail.com



Seoul, S.Korea
Sat, January 14, 2017

Garments and Objects N° 01 — Polo Ralph Lauren, Striped Shirt
옷과 물건들 01. 폴로 랄프 로렌, 줄무늬 셔츠


written and photograph by Hong Suk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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