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ments and Objects N° 02 — COMME des GARÇONS, Backpack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가장 먼저 해야 했을 일은 지난밤, 비몽사몽에 초안을 작성한 <하퍼스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에 보낼 원고다. 그러나 종종 몸 푸는 기분으로 일과 전혀 관련 없는 무언가를 기어코 해내리라는 마음이 앞설 때가 있고 그게 지금입니다, 안 선생님.
방 정리를 오랜만에 하고서, 이제 드디어 집 어디에 무엇이 있나 명확히 알게 되니 어쩐지 애정을 지닌 물건들에 관한 글을 그저 써보고 싶어졌다. 적당한 과소비의 결과물이거나, 뜻하지 않은 소위 '득템'의 뿌듯함이라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오래 사용하여 손에 이미 익은 무언가를 말이지.
그렇게 생각한 물건은 가방으로, 그중에도 백팩 backpack, 즉 '배낭'이다. 꼼데가르송 COMME des GARÇONS 제품이고, 지난 2016년 9월 말 파리 여행에서 샀다. 엘리제 궁을 마주한 꼼데가르송 플래그십 매장에 이 짙은 베이지색 가방이 콘크리트 바닥에 다소곳하게 놓여 있었다.
파랑은 너무 파랗고, 카키색은 지금 봐도 나쁘지 않지만 그저 베이지색이 갖고 싶었다. 치노 팬츠 색이기도 하니까. 커다란 크기와 좀 더 작은 크기 중 작은 걸 골랐다.
서울 꼼데가르송 매장에선 보지 못한, 신상품인 듯한 검정 배낭도 끌렸지만 어깨줄 안감을 전부 딱딱한 검정 가죽으로 마감한 디자인 탓에 가격이 기존 대비 50% 정도 비쌌고, 포기했다. 천 쪼가리 배낭을 30만 원 넘게 주고 사는 건 아니잖아, 하면서.
하지만 이 가방의 무엇이 사람을 끌리게 하고, 지난 9월 말부터 이제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기존 모든 가방을 제치고 이 가방만을 들게 했나?
생각하면 답은 단순했다. '잘 만들었다.'
앞주머니가 하나 달린 배낭에 20만 원 정도 가격대가 선택지라면, 실용성을 따질 때 솔직히 이 가방을 고를 이유는 없다. 이 가방은 요즘 나오는 가방치고 아주 불친절하다.
흔한 노트북 컴퓨터 파우치도 없고, 안주머니도 따로 없으며, 그렇다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속을 보호할 수 있는 내피가 두툼하지도 않다(홑겹이다!). 그러나 꼼데가르송의 팬이라면 한 번 마음을 당길 사소한, 누가 알아차리지 않아도 혼자서 만족하고 마는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어깨끈 연결 부위를 위아래 모두 검정 소가죽으로 마감한 점, 부드럽게 열리는 검정 무광 코팅의 YKK 지퍼, 앞주머니 오른편에 작게 달린 'COMME des GARCONS'을 은박으로 새긴 검정 가죽 탭, 그리고 노트북 컴퓨터를 넣으면 (파우치 공간이 없어서) 제멋대로 모양이 뒤틀리긴 해도, 바느질 하나하나가 아주 튼튼하구나, 느낄 수 있는 부분까지.
비싼 돈 주고 사서 자기만족의 정당화를 위한 변명 같긴 하지만, 이 가방은 해지고 낡아도 여기저기 기우고 때우며 사용하고 싶은 매력이 있다.
그렇다면 왜 이 가방이 사고 싶어졌는가?
단순히 '남이 맨 걸 보고 예뻐 보여서'라는 이유가 컸다. 2016년 8월, <서울 무제 SEOUL UNTITLED> 전시 때 구경 와준 '혜인서 HYEIN SEO'의 혜인씨가 이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는 도쿄 매장에서 하나 남은 가방을 충동적으로 샀다며 웃었다.
이후 다시 이 가방을 접한 건 무슨 행사 때문에 간 한남동 꼼데가르송 플래그십 매장이었는데, 그때 진지하게 사야 할까 고민했다가 단지 그날 입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쩐지 더위에 짜증도 섞여 있었는지라 참았다. 그리고 다시 파리 매장에서 발견했다. 가격도 한국보다 10만 원 가까이 저렴했다(면세 혜택도 받았으니).
혜인씨는 1년의 반은 안트워프에 있으니까, 마주칠 일은 없겠지…! 하며 파리에서 계산대로 가방을 쥐고 결제한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이보다 더 실용적으로 설계한 배낭이야 집에도 몇 개는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담백한 기본에 기성품이지만 핸드메이드라는 기분이 드는, 아주 단단한 만듦새가 매력적인 가방이다.
다시 실용성에 최적화한 (포터 Porter 같은) 배낭에 마음이 기울지 않는다면, 언젠가 새로 나온 검은색을 하나 더 살지도 모른다.
Paris, France
Mon, September 26, 2016
Garments and Objects N° 02 — COMME des GARÇONS, Backpack
옷과 물건들 02. 꼼데가르송, 배낭
written and photographs by Hong Suk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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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과 물건들 Garments and Objects'이라는 제목으로 좋아하는 의복과 장신구들에 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십수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쳐 간 옷과 장신구 중 선별한 모음입니다.
이제는 옷장에 틀어박혀 있는 무언가를 다시 끄집어낼 수도, 최근 친애해 마지 않는 장신구나 스니커즈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무척 개인적인 물건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이 이 기록을 보며 슬며시 미소 짓거나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값비싼 소유의 과시가 아닌, 편한 친구의 옷장 혹은 작업실처럼 느껴진다면 좋겠습니다.
<옷과 물건들>, 즉 '가먼츠 앤 오브젝츠'는 2017년 1년간 틈틈이 써 내려갈 예정이며 모두 100가지를 모으면 문고판 책으로 출판하고 싶은 계획도 있습니다.
그 두 번째, 꼼데가르송의 배낭입니다. 위의 글은 2017년 2월 10일에 처음 쓰고, 이번에 조금 탈고했습니다.
문의. yourboyho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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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Supplement.
꼼데가르송, 파리 플래그십 매장 COMME des GARÇONS Paris Boutique
파리 꼼데가르송 플래그십 매장은 1층짜리 아주 작은 매장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꽤 넓은 면적이란 걸 알게 된다. 매장 맞은편은 '트레이딩 뮤지엄 TRAIDING MUSEUM'이라는 공간인데 내가 갔을 때는 인력 부족(?)으로 사람들이 요청하면 열어줬다.
트레이딩 뮤지엄 꼼데가르송 매장은 도쿄 아오야마에도 있다. 꼼데가르송이 선별한 신진 디자이너들의 옷과 장신구, 그리고 책을 고르는 선구안이 탁월한 아이디어 북스 IDEA Books가 트레이딩 뮤지엄을 위해 고른 예술과 문화 서적들을 함께 판다.
이 오래된 페인트 칠이 심심한 매장 앞에, 패션위크가 되면 온갖 파리의 패션 키즈부터 거장 디자이너와 에디터들이 삼삼오오 모인다는 게 재미있다.
꼼데가르송 셔츠 COMME des GARÇONS SHIRT 라인의 줄무늬 셔츠들은 이제 내 나이만큼 계속 나왔을 텐데, 매 시즌 그들이 셔츠 위에 펼치는 재치가 매번 비슷해 보여도 지갑을 열까 말까, 고민의 구렁텅이로 빠트린다.
사진 중간 즈음, 팔꿈치에 빨간 타탄 체크무늬를 덧댄 셔츠는 가슴팍에도 비슷한 디테일이 있고 단순히 소매 위를 감싼 게 아니라 체크무늬 부분을 연결 통로처럼 위아래 줄무늬 원단이 이어져 있는 디자인이었다. 갈등했지만, 요즘 셔츠를 잘 입지 않으니까,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이런 예술 작품들도 실제 입으라고 만든 옷입니다.
전형적인 파리 아파트 안에 들어선 매장이라, 매장과 큰길에서 들어오는 통로에는 작은 마당이 있고 마당에는 커피숍이 있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커피 맛도 괜찮고, 맥주도 판다.
written and photographs by Hong Suk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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