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cle] So Graphics on Spring 2017
Harper’s Bazaar Korea
So Graphics on Spring 2017 — 2017년 봄을 일깨우는 패션계의 그래픽 패턴 플레이
움츠러든 모든 생물이 기지개를 켜는 봄이 온다. 풍성한 실루엣이 두툼한 겨울 코트의 특권이라면, 패션의 봄을 이야기하는 데 빠질 수 없는 건 온갖 종류의 ‘그래픽 graphic’과 ‘패턴 프린트 pattern print’이다. 화려하고 강렬하거나, 은은하고 서정적이거나.
‘봄’의 싱그러움, 생동감과 역동적인 기운, 따사로운 햇살과 두근거림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에 그래픽 패턴만 한 것이 없다. 풍성한 색채 팔레트와 어우러진 온갖 그래픽 패턴을 보면, 무채색으로 점철한 패션이란 얼마나 지루한가 깨닫는다. 2017년 봄, 패션 디자이너들은 약속처럼 ‘그래픽’에 힘을 쏟았다. 고전적이며 글래머러스한 여성상을 찾아 타임머신을 타거나, 여행과 영화처럼 새로운 발견에서 영감을 얻었다.
© Chanel Spring/Summer 2017 campaigns. Photographed by Karl Lagerfeld.
1. Retro, Super, Future.
1980년대, ‘파워 숄더’로 이름 붙은 당당한 실루엣은 남성들에게 견줘도 부족할 게 없다는 여성들의 사회적 표출이었다. 이번에 패션계가 주목한 그래픽 트렌드는 80년대를 비롯한 과거의 유산이 남긴 특유의 과장과 화려함이다. ‘복고풍 retro’ 분위기를 한껏 살린 컬렉션들은 그래픽 요소만이 아니라 코트의 실루엣과 수영복 그래픽, 재킷과 원피스의 패턴까지 ‘리트로 디자인’으로 뒤덮였다.
미래 로봇과 인공 지능을 주제로 잡은 샤넬 Chanel은 80년대에 상상한 꿈과 희망의 21세기를 그래픽으로 승화했다. 수주가 걸친 네온사인 패턴 오버코트는 80년대 상류층 여성들의 디너 파티 실루엣처럼 풍성했고, 리 샤오 싱 Li Xiao Xing이 입은 발랄한 캔디 컬러 트위드 스커트 수트는 어린 시절 옆에서 놀던 친구들 옷에서 많이 본 동심(쉽게 말하면 아동복)의 색과 패턴이 떠올랐다.
물론 모두가 그 시절로 방향키를 돌리진 않았다. 미우치아 프라다 Miuccia Prada는 미우미우 Miu Miu 컬렉션에서 낭만적인 과거 휴양지로 떠났다.
플라워 패턴을 섬세하게 장식한 수영 모자와 빈티지 커튼, 할머니 옷장 속 드레스의 프린트 패턴이 골고루 모였다. 1960년대 초중반 유행한 ‘비치 파티 영화 beach party film’에 나타난 그래픽과 색상은 컬렉션의 주요 소재가 됐다. <비치 블랭킷 빙고 Beach Blanket Bingo, 1965>처럼 휴가 시즌이면 단골로 나온 하이틴 영화들 말이다.
비치 타월로 만든 코트와 투피스 수영복의 플라워 프린트, 둥근 단추 디테일은 오래된 패션잡지에서 그대로 오려낸 듯 보였지만, 촌스러워 보일 그래픽을 서정적으로 담아낸 건 오롯한 디자이너의 능력이었다.
그에 반해 프라다 Prada 컬렉션은 미우치아 자신이 생각한 과거와 현재, 미래의 패션을 한 번에 담아낸 ‘연대기’였다. 포근하지만 고전적인 깅엄 체크무늬 재킷과 새틴 치마를 입은 창백한 모델들은 미우미우식 60년대 소녀의 ‘숙녀’ 버전일까…? 부드러운 살구색 복고풍 플라워 프린트 드레스는 소맷단을 깃털 장식으로 찰랑거리게 하여, 패턴이 주는 리듬감에 생기를 불러일으켰다. 섬세한 아름다움과 기능성을 동시에 생각하는 조화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로 꼽히는 뎀나 바살리아 Demna Gvasalia 역시 오래된 미래를 만드는 재능이 탁월하다. 뎀나의 뮤즈이자 스타일리스트인 로타 볼코바 Lotta Volkova가 발렌시아가 Balenciaga 컬렉션에서 입은 몸에 꼭 붙는 선명한 녹색 플로럴 드레스는 조금 불량스럽고 자유분방한 ‘히피’ 정신이 젊은이들의 생활 태도였던 1970년대 유럽 어딘가였다. 고풍스런 빈티지 플라워 프린트를 가죽 가방에 끼얹고도, 그저 소유하고 싶게 한 재주는 한 마디로 ‘물이 올랐다’.
© Chanel Spring/Summer 2017 collection.
© Miu Miu Spring/Summer 2017 campaigns. Photographed by Alasdair McLellan.
© Miuccia's inspiration for Miu Miu; <Beach Blanket Bingo>, 1965.
© Prada Spring/Summer 2017 campaign. Photographed by Willy Vanderperre, styled by Olivier Rizzo.
© Balenciaga Spring/Summer 2017 Campaigns. Photographed by Harley Weir, styled by Lotta Volkova.
2. Various Ways of the Stripes
과거로의 여행이 도드라진 패션 하우스들과 반대로, 동시대 contemporary 패션계가 꾸준히 사랑한 ‘줄무늬 stripes’ 패턴을 다양하게 재해석한 디자이너들도 눈길을 끈다.
발표하는 컬렉션마다 호평받으며 21세기 일본 패션계 원톱으로 자리 잡은 사카이 Sacai는 예의 서정적인 니트웨어 위에 남성적인 스트라이프 셔츠 드레스를 입혔다.
실비아 펜디 Silvia Fendi와 칼 라거펠트가 머리를 맞댄 펜디 Fendi는 경쾌한 줄무늬 패턴과 계절의 생동감을 드러낸 원색으로 줄무늬 패턴을 쇼 전반에 내세웠다. 각기 다른 두께의 줄무늬는 각기 다른 색의 짧은 모피 재킷과 곡선 세공 장식의 가방, 가죽 카고바지와 만나 젊은 고객들을 손짓한다.
밀라노 패션위크의 새로운 물결, 포츠 1961 Ports 1961의 나타사 카갈리 Natasa Cagalj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파자마 룩 pajama look’ 줄무늬 패턴을 오버사이즈 셔츠부터 니트 원피스까지 폭 넓게 적용했다.
파랑과 녹색, 흰색과 회색처럼 제한된 색으로 편안한 셔츠와 절개를 넣은 와이드 팬츠를 결합하는가 싶더니, 열대 과일이 떠오르는 멀티 컬러 줄무늬 그래픽 드레스로 대단원을 장식했다.
프로엔자 스쿨러 Proenza Schouler의 라자로 헤르난데즈 Lazaro Hernandez와 잭 맥콜로 Jack McCollough 듀오 역시 ‘컬러 온 컬러’로 섬세하게 직조한 줄무늬 ‘컬러 블록’ 니트 드레스로 호평 받았다.
흔히 사용하는 줄무늬보다 더 넓은 면적의 그래픽을 더해 이브 생로랑의 ‘몬드리안’ 컬렉션이 생각나기도 하고, 포츠 1961과 미쏘니 가문의 화려한 니트 드레스 중간 어딘가 있는 느낌도 들었다.
이처럼 같은 패턴이라도 누군가는 남성적으로, 누군가는 여성스럽게 풀어냈다. 특히 줄무늬 그래픽과 결합한 발목을 덮는 니트 드레스는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유행의 전조였다.
© Sacai Spring/Summer 2017 film for "THAT" bag collection. Shot by Craig McDean, Creative director as Karl Templer, Models as Alice Metza, Binx Walton, Jess Picton Warlow, Kiki Williams and Lexi Bolling.
© Backstage of Ports 1961 by Natasa Cagalj, Spring/Summer 2017 collection.
© Proenza Schouler Spring/Summer 2017 campaign. Photographed by Zoe Ghertner.
3. All-Powerful Geometric Prints
기하학적인 프린트가 가장 도드라지는 옷은 단언컨데 여성의 실루엣을 한껏 드러내는 ‘드레스’와 ‘원피스’ 종류다.
마리 카트란주 Mary Katrantzou는 동시대 여성복 디자이너 중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따라올 자가 없다.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영감 얻은 벽화와 도자기 속 패턴을 중심으로 완벽한 색채 대칭을 이룬 원피스는 ‘프린트 텍스타일이 여성의 몸을 바꿀 수 있다’는 디자이너의 믿음처럼, 예술작품 같은 기성복으로 우아하게 탄생한다.
스트리트웨어의 총아에서 점점 더 고급 기성복 업계로 눈길을 돌린 버질 아블로 Virgil Abloh의 오프화이트 Off-White와 루이비통 Louis Vuitton의 니콜라 제스키에르 Nicolas Ghesquière는 간결하게 반복하는 물방울무늬와 바둑판 패턴으로 각기 다른 80년대풍을 완성했다.
붉은 롱 부츠가 비치는 시스루 소재로 소매가 손가락 마디를 덮을 정도로 갸날픈 디자인이다. 반면 루이비통은 체스판 무늬 상의에 글리터 장식을 뿌리고, 다시 색을 반전한 물방울무늬 와이드 팬츠와 함께 매치한 룩은 다분히 과거 지향적이다.
© Mary Katrantzou Spring/Summer 2017 collection.
© Off-White™ by Virgil Abloh Spring/Summer 2017 campaign.
© Louis Vuitton Spring/Summer 2017 campaigns. Photographed by Bruce Weber.
쉬운 모방과 쉽게 버리는 패스트 패션이 판을 치는 시대다. 위에 소개한 컬렉션들은 그래서 가치가 있다.
하이패션이 물론 완벽한 창조는 아니며 디자이너들도 과거 특정 시점과 순간들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무대 위에서 접한 ‘지금 보고 지금 사는 See Now, Buy Now’ 패션 디자이너들의 결과물, 그중에서도 ‘그래픽의 향연’들은 치밀한 구현 기술과 아름다운 패턴이 모인 하나의 걸어다니는 작품에 가깝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재밌는 사진을 한 장 발견했다. 지난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위협한 혁명가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가 ‘베트멍 VETEMENTS’ 로고가 적힌 후드 파카를 입고 군중 앞에 선 장면이었다.
초로의 당당한 풍채에 디자이너의 의도였을 법한 오버사이즈가 되지 않고, 딱 맞은 후드 티셔츠가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내포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Bernie Sanders’와 ‘Vetements’을 함께 구글에 검색하니, 이미 미국 패션지에는 각 업계의 이단아에서 열풍의 주역이 된 둘을 연관 지어 분석한 기사들이 보였다.
조금 샛길로 갔지만, 그래픽 디자인이란 이처럼 전혀 다른 두 장르와 문화가 친숙하게 보이도록 하는 힘을 지녔다. 때로는 비슷한 그래픽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이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평화’를 상징하는 로고에서 작대기 하나를 뺀 ‘피스마이너스원 PEACEMINUSONE’ 그래픽으로 패션계를 접수하려 나선 지드래곤 G-Dragon부터 슈프림 Supreme을 기어코 파리 런웨이에 올린 루이비통 Louis Vuitton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킴 존스 Kim Jones까지, 우리는 이미 문화적으로 각인된 모든 그래픽과 그들의 상승효과를 주입한 옷, 그리고 액세서리를 사랑한다.
© Bernie Sanders wears ‘Vetements' hoody.
<하퍼스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2017년도 3월호에 2017년 봄/여름 시즌 '그래픽 패턴'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이번 시즌 주목해야 할 패션 디자이너와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들추면서, 쉽게 볼 수 있는 캠페인과 중요한 작업들도 함께 담았습니다. 마지막에 쓴 '버니 샌더스' 관련 일화는 사실 뜻밖의 발견이었습니다.
I wrote an article about 'graphic patterns in Spring/Summer 2017 fashion' to <Harper's Bazaar Korea>'s March 2017 issue. The 'Bernie Sanders' thing is a coincidence for me.
Written by Hong Sukwoo 홍석우
Fashion Journalist, <The NAVY Magazine> Editor/ Fashion Director.
서울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컨설턴트, 수필가인 홍석우는 패션 바이어와 스타일리스트, 강사 등을 거쳐 미국 스타일닷컴 Style.com 컨트리뷰팅 에디터와 서울의 지역 문화를 다룬 계간지 <스펙트럼 spectrum>과 <어반라이크 Urbänlike> 편집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의 거리 사진을 올리는 블로그 ‘yourboyhood.com’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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