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현동 _ Thu, September 08, 2016


엊그제 집에서 책장 안에 있는 온갖 잡지며 책을 정리했다. 저녁부터 밤까지 여섯 시간 이상을 온전히 들였다. 모으는 잡지들과 사다 보니 취향처럼 보이는 단행본들을 가지런히 놓고, 드디어 '정리했다'는 뿌듯한 여운을 저녁 내내 지켜본 가족과 공유한 다음, 날이 바뀐 새벽에 2016년 애플 이벤트를 (나도 모르게) 전부 감상하고는 눈 붙이지 않고 낮까지 밀린 원고 세 개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좀 걸어 다녔다. 

요즘 혼자 꽂힌 동네는 다시 종로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 일상을 영위한다는 당연한 사실에 새삼스레 문득 놀란다. 시청 앞 광장, 남대문, 거대하게 새로 지은 종로1가 커다란 빌딩 숲과 상가들, 여전히 서점에서 책을 읽은 사람들…. 

노을이 지던 어느 광화문에서 잽싸게 밤을 낚아채던, 극적인 그림자와 퇴근하며 주말을 고대하듯이 이곳저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던 며칠 전 혼자 보낸 시간도 밤을 꼬박 새운 다음날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광화문에서 시청 앞 잔디광장을 지나 남대문으로 넘어가며, 갑자기 고장 난 이어폰은 아쉬웠지만, 종종 다녔다고 생각한 회현동 뒤편에 그런 생경한 동네가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표피는 거대한 주상복합이며 대기업 백화점이며 밀린 차와 관광객들의 여파가 잔상처럼 남았는데, 안에 들어가니 온갖 궂은 일처럼 보이는 작은 의류 공장들과 중국인처럼 보이는 조선족들과 혹은 그 반대의 사람들, 그리고 그저 오래 동네에 산 사람들이 모여 오르락내리락하는 골목길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걸어본 길이었다면 기시감이라도 들었을 텐데, 신기하게도 옆으로 지나치기만 한 곳이었다. 

9월 8일, 세찬 소나기 이후 햇볕은 폭염 수준은 아니나 제법 따가웠고, 땀에 모자와 티셔츠는 젖었지만 다섯 살처럼 혼자 돌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무언가 일을 마치고 시간이 날 때, 걷고 있다면 카메라를 하나 들고 아무 동네나 혼자 돌아다니는 걸 원래 좋아했다. 

동네가 꼭 요즘 젊은 사람들이 몰리는 예쁘고 멋진 곳일 필요는 전혀 없고, 되려 그런 곳이라면 어느 정도 꺼려지는 것이 본능이다. '아니, 이런 곳도 존재했나?' 싶을 정도로 모르는 사람들이 거닐고 아직도 남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오래된 간판이 2016년답지 않게 우두커니 있는, 그런 때와 시간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툭,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 중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게 한 손에 꼽기조차 어려워도 수십 년이나 살아온 도시에 여전히 모르는 곳들이 이리 많구나 생각이 들면 어쩐지 아직 조금 어린 것 같고 일과 관계없이 할 이야기들이 많아지는 느낌에 혼자 신이 나는 것이다.












Seoul, S.Korea
Thu, September 08, 2016

Hoehyeon-dong 회현동


photographs by Hong Suk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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