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탐방 City Tour _ Sat, September 16, 2017


드물지만 취미가 뭔지 묻거나 답할 일이 생긴다. 어린 시절 특기와 취미를 적은 틀에 박힌 표현처럼 '독서', '음악 감상' 혹은 '사진'과 '산책'으로 특정하여 말하긴 모호했다. 최근 몇 번은 넷플릭스' 정도로 답하였다. 취미라기에는 씁쓸한 거다.

이번 주에 왠지 '도시 탐방 city tour'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스치듯 웹에서 보았던가? 지난주처럼 맑고 지난주보다 더 가을에 다가선 토요일, 짙은 남색 산행 재킷에 가벼운 트래킹 반바지를 입고, 묵직한 라이카 Leica Q를 새로 산 핸드 스트랩으로 감싸 쥐고, 광장시장 근처에서 치과 치료를 마친 후 뚜벅뚜벅 걸었다. 예지동 시계 골목과 세운상가, 청계천과 을지로4가, 평소 전혀 갈 일 없는 어느 커다란 기업 빌딩 앞 고즈넉한 광장을 지나 영풍문고에 갔다. 햇볕은 따가웠지만 불쾌하지 않았고 건물과 나무가 지은 그늘이란 그늘은 오아시스처럼 상쾌했다. 책을 보고 잡지를 한 권 사서는, 새 단장 중인 덕수궁 돌담길 주변 좋아하는 건축물인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도 눈도장을 찍었다. 가로수를 심은 바닥 금속 틀에 귀엽게 판 한글 모양은 처음 보았다.

몇 년 전 덕수궁 미술관 상설전을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나서, '박근혜 탈출'을 우렁차게 외치는 - 한숨만 그저 내쉬면서 - 극우파 노년층을 지나 출입구로 들어갔다. 창경궁 정도는 아닐지언정 벽 하나만 지나면 이렇게 탁 트인 궁궐이 서울에는 있다. 아쉽게도 미술관은 공사 중이었지만 <덕수궁 야외 프로젝트: 빛•소리•풍경> 설치 전시는 흥미로웠다. 궁궐이 단지 오래된 유적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꾸 들어서서 손짓하는 기분이었다. 참여 작가들이 도시와 과거, 유산을 재해석하는 재능도 탁월하였다.

세 시 반에 팟캐스트 Podcast <복싴남녀> 두 번째 녹음이 있어서, 뚜벅이 걸음의 종착지는 서소문동 근방이 되었다. 택시를 잡기 전, 스타벅스가 들어선 건물은 누가 봐도 오래된 건물이라고, 특히 바닥 돌의 점박이 무늬가 말해주었다. 정확히 두 시간 녹음을 마치고 나와, 꽁치 김치찌개를 넷이 먹고, 염창역을 지나 양화대교로 가는 길목을 다시 걸었다(배도 부르고). 

누군가 이제 취미를 묻는다면 그저 산책이 아니라 '도시 탐방'이라 말하고 싶다. 으리으리한 도시와 남들에게 앞서감을 좇는 여정이 아니라, 때론 즉흥적이며 때론 계획적으로 도시 곳곳을 걷고, 이어폰 대신 사람들의 목소리와 동네의 소음을 감수하면서, 어딘가 뒤틀려 있거나 어딘가 기억에 남은 모습을 렌즈 안에 담는 것이다. 오랜 걸음과 가벼운 러닝화 또한 동반할 것이다.
























Seoul, S.Korea
Sat, September 16, 2017

City Tour


photographs by Hong Suk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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