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상가 _ December 16, 2017


생각보다 더 많이 빠르게 변하는 도시다. 작년 열광하였던 무언가를 벌써 놓아버리기도 한다. 어느 이른 오후, 상대가 깜빡한 점심 약속에 서둘러 가는 택시가 이미 내부순환로에 들어섰다. 멈춰달라고 하기에는 오랜만에 보는 햇빛이 상쾌하였다. 빨리 세워봤자 마장동이었다. 약속 장소였던 가로수길 대신 압구정역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 습관처럼 압구정 CGV 쪽으로 듬성듬성 걸었다. 

오래된 상가는 주로 밤에 몇 없는 술친구들과 와서 마시는 실내 포장마차가 있는 곳으로, 낮에는 아무 의미도 없기에 보통 지나쳤을 곳이었다. 상가를 관통한 후미지고 무미건조한 회색 벽 건너 들어오는 햇살에 끌렸을까. 평소와 달리 건물 안에 들어섰다. 자주 지나다니는 곳인데도 오래된 생각이 났다. 중학생 시절 이 건물 1층에서 끈덕지게 NBA 카드를 모으는 가게를 들락거렸다. 비슷한 시기 지하 1층 상가 들어서자마자 있던 비디오게임 구멍가게에선 거의 살았다. 몇만 원짜리 닌텐도 휴대용 게임기 하나를 사려면 용돈을 부들거리며 모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액정 위 플라스틱에 잔 흠집이 무수하게 난 게임보이 포켓 GAMEBOY Pocket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사서, 덮개만 바꾸고는 '드디어'하고 세상 다 가졌던 기억이 그곳이었다.

한 동네에서 12년 가까이 살았는데도 이 동네에 아직도 애정은 생기지 않았다. 동네 지하철역 가까운 출구가 오랫동안 공사 중이라, 불편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원래 횡단보도가 없던 교차로 큰길에 짧은 건널목이 생겼다. 동네를 빠져나오는 길모퉁이에 제법 오래된 가게가 있다. 과일 가게일 텐데 요즘은 강냉이도 판다. "여기도 많이 변했죠." 며칠 전 집에 오는 길, 오랜만에 길음동에 온 택시 기사님은 강냉이와 과일을 파는 가게가 붙은 오밀조밀한 단층 상가들을 가리키며 "여기만 그대로네요." 했다. 처음 마음에 들었던 동네 모습은 그 오래된 가게들이 곳곳에 짓는 새로운 아파트와 공존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사느라' 같은 핑계로 여럿 잊고 또 잊었다. 어디 떠난다든지, 도시를 벗어나는 것만이 여행의 실마리는 아니다. 잊은 것들 사이에도 무언가는 선명히 남아 있으리라.



Seoul, S.Korea
Fri, December 01, 2017


압구정동 Apgujeong-dong



Mon, December 11, 2017

길음동 Gireum-dong


photographs by Hong Suk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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