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und Control to Major Tom


<월터 미티의 비밀스러운 삶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한국어 제목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로 2013년 개봉작이다. 상상 속에서만 어딘가로 떠나던 월터처럼,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평소 갈 일 없던 이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미국을 거쳐 가던 멕시코행, 혹은 브라질 월드컵 기간의 베를린행 비행기였을 것이다.

기내용 영화로도 재밌게 보았지만 조각난 기억들이었다. 처음부터 본 것도 아니고 결말도 국수 말아 먹듯이 후루룩 삼켰다. 가물가물해진다는 표현을 넘어 이미 뇌 내에서 사라졌을 무렵, MBC 파업 사태가 끝난 후 마음먹고 들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재방송 팟캐스트 Podcast에 노래가 한 곡 나왔다. 

‘여기는 관제소, 톰 소령에게 Ground Control to Major Tom’라는 후렴구가 떠나지 않는 데이비드 보위 David Bowie의 ‘스페이스 오디티 Space Oddity’였다. 2013년인가 2014년에는 이 노래를 몰랐다. 극 중 월터가 용기를 내며 헬리콥터로 달려가는 장면에 이 노래가 흐른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이해할 수 없던 퍼즐이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 재방송에서 이어졌다. 최근 2주가량 일할 때면 반복하여 듣다가, 2017년 12월 27일에 몇몇 영화관에서 재개봉한다는 소식까지 닿았다. 12월 31일 새벽, 시간 허비용 넷플릭스 Netflix를 틀고 원고를 몇 개 정리하다가 문득 생각났다. 조조나 볼까.

가까운 거대 체인점 영화관 대신 가장 최근 간 영화관이자 원래 좋아하였던 서울극장을 검색했다. 사실 꼭 이 영화가 아니어도 되었다. 가장 일찍 시작하는 영화라면 뭐든 상관은 없었다. 뭐든 예매한 후 자지 않고 밖에 나가 극장 문을 열어젖힐 참이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현재 상영 목록에 있었다. 오전 11시 반, 단관. 상영 당일 새벽임에도 54개 좌석 중 첫 예매자였다. 해가 뜨고 결국 잠들어서는 아슬아슬하게, 아이스 커피 한 잔 들고 영화관에 들어서니 시작한 지 몇 분이 지났다. 월터는 이미 첫 번째 상상 혹은 망상을 막 하려던 찰나였다.

영화가 얼마나 흥행하였는지는 모른다. 어느 정도 예상대로 흐르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드라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연으로 나서서 억지로 웃기려 들지 않고, 정극 연기를 하면서도 해학이 배어 나오는 벤 스틸러 Ben Stiller라면 믿고 본다(그의 최근작 평가들이 좋지 않아도 지지한다). 20세기 가장 훌륭한 잡지 중 하나였지만 닷컴 시대를 지나며 결국 사라진 <라이프 LIFE>가 종이 잡지의 몰락과 사회관계망서비스의 득세, 무엇이든 쉽게 잊고 마는 모바일 문화로 점철한 요즘 시대가 수년 전보다 더 겹쳐 보여서 짠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둘러싼 변화를 이야기하는 영화에 하필 ‘삶’이란 이름의 잡지가 있었다는 점은, 예술영화의 복잡한 은유에 비할 수 없을지언정 명쾌하고 충실한 신조였다.

가끔 영화란 가사가 맴도는 음악과 닮았다. 어떤 영화들은 냉철하게 남의 일처럼 동떨어진 채로 볼 수 없다. 극적으로 포장한 월터의 짧은 여정과 결코 비슷하다고 말하기 어려우나, 그 세세한 장면 장면에 나타난 어떤 마음과 감정이 몸속 어딘가 겹쳐 들어와 몇 번 찔끔 눈물이 났다. 가사를 외울 정도로 많이 듣고 난 후 다시 듣는 그린란드 선술집 장면의 데이비드 보위 목소리는 특히 그랬다.

작은 상영관에 적은 사람들이라 비슷하게 개봉한 블록버스터처럼 우수수 몰려나가는 인파에 치일 각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참여 스태프 자막도 마지막에 도달할 무렵, 수년 전 기내에서는 몰랐던 오로라 풍경이 천천히 나타났다 사라졌다. 채도가 낮은 영화관 건물 바깥에는 언제 미세먼지가 있었냐는 듯 아스팔트 바닥 틈새를 물들이는 햇볕이 내리쬐었다. 여운만큼은 혼자 조금씩 희석하며, ‘스페이스 오디티’ 없이 - 크리스틴 위그 Kristen Wiig가 부른 노래를 따로 듣고 싶었는데 - 정직하게 배경 음악만 가득 찬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걸었다. 눈에 띄게 사람이 적은 종로3가와 을지로, 충무로 골목을 거쳐 명동과 덕수궁을 지나 광화문까지 거닐었다. 해가 떨어지며 귀는 조금씩 시렸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올해 마지막 날 오후였다.


Seoul, S.Korea
Sun, December 31, 2017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photograph by Hong Sukwoo

Comments

Popu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