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모드 Craig Mod


예전에 라이카 Leica Q 사용기를 검색하다가 어느 웹사이트에 들어간 적이 있다. 보통 카메라 사용기를 다루는 블로그나 웹사이트들은 필연적으로 공대생 감성이 진하게 풍기는데, 이 웹사이트의 필자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그는 일본 곳곳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파주,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 다양한 곳에서 자신이 여섯 달 이상 실제로 사용한 기록을 사진과 함께 남겼다. 내가 불타오르듯이 열망하며 저 카메라를 소유하게 되었던 가장 큰 지분 중 일부가 그에게 있었다.

​웹사이트의 주인은 크레이그 모드 Craig Mod라는 남자이다. 아이패드 초기부터 잘 사용한 뉴스 큐레이션 앱 플립보드 Flipboard에 다녔고, 이후 일본에 정착하여 15년 넘게 살면서 글을 쓴다. 그의 글은 자신의 전문 분야인 IT와 출판뿐만 아니라 조금 많이 다른 곳으로 확장되었다. 그는 글을 쓰며 사진을 찍지만, 자신의 사진을 예술이나 작가의 작업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그의 사진은 걷는 행위, 즉 산책 walking에 관한 담담하고 숭고한 기록이다. 가령 3세기 전부터 일본 오지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길을 다시 걷고, 그 안에서 마주한 현재의 모습과 사람들과 풍경을 기록하는 식이다. 그 틈새를 점령한 이야기들은 위압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다.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사진을 읽으면 지금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걷고 싶어진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얼마 전 그의 웹사이트에 다시 방문하였다. 몇 년이 지난 사이, 그는 자신의 ‘직업적’ 글과 사진, 그리고 ‘산책’하며 느낀 바와 사진을 나누어 뉴스레터를 내보내고 있었다. 모든 글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가 어디서 언젠가 걷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의 독자 또한 걷고, 자신의 감상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아직 그 구조를 정확히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틈틈이 올라오는 글과 사진에 매료되었다.

​얼마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요즘 걷는다는 것, 즉 산책에 꽤 빠져 있다. 오래 산 도시의 매일 다니는 길은 특별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런 길을 매일 걷다 보면 종종 계절의 경계에 들어선 순간이 나타난다. 다시 짓고 무너지는 공사 현장이 10년 넘게 산 동네의 일상을 바꾸기도 한다. 이제는 사라지는 이상한 간판들과 사람만 보이면 경계를 늦추지 않는 길 고양이들의 아지트도 알게 된다. 그리고 물론 사람들이 있다. 적당한 익명성으로, 그러나 켜켜이 쌓아 놓고 보면 그 속을 관통하는 어떠한 흐름 같은 것이 보이는 거리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걷는 행위는 아주 긴 벽의 벽돌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 하나하나는 사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평소 눈에 들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생기고는 한다. 올해 나는 그의 웹사이트를 보면서, ‘산책’하며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풀어보고 있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진 풍경들, 햇살보다 구름과 미세먼지가 더 자연스러워진 일상들, 그리고 걷자고 마음 먹은 이래 다짐하지 않으면 걷지 않았을 법한 지역들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특별한 결과를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은 아니나, 꽤 영감을 주었다.



craigmo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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