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 December 01, 2021

 
아침에 일어나 시계를 보니 12월 1일이라는 날짜가 찍혀 있다. 30일이 11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놀랐다. 어제는 회의와 그 전후 이어진 반복 수정 작업에 신경을 몰두하느라 빠르게 탈진했다. 11월 30일도, 12월의 첫날도 100% 인지하지는 못했다.

2021년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머리 한쪽에 저장한 채로 요즘 하는 일을 돌아본다. 몇 가지 새로운 작업을 곧 시작한다. 이번 주에는 중간 결산과 준비 과정이 동시에 포진해 있다. 자료를 찾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제안서를 쓴다. 회신해야 하는 메일도 있다. 이런저런 내용을 정리하여 보내고는 막상 가장 중요한 예산 이야기를 아직 하지 않았다. 이미 몇 달은 늦은 송장도 작성해야 하는데. 해가 가기 전에 할 일이 많다. 그래서인지, 공간이 변하면 어느 정도 신선한 마음이 감돌기 시작할까, 생각하였다.

내년 3월이면 성수동으로 스튜디오를 옮긴 지 2년이 된다. 한강 북쪽으로 더 올라가고 싶어서 그제는 대학로와 동대문 사이, 이화동 근처를 탐방하였다. 사진으로는 완벽했던 매물은 사기에 가까운 광각 카메라 덕택이었다. 이후 본 두 개의 공간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생각하며 틈틈이 찾는다. 지금 공간도 꽤 괜찮구나, 싶다.

버질 아블로 Virgil Abloh의 부고에 관한 글을 쓴 이후 — 엄밀히 따지면 그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 마음에 애도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어떤 오프화이트 OFF-WHITE 제품도 가지고 있지 않으나,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이후' 루이비통 Louis Vuitton에서 가방 몇 개를 샀다. 그가 쓴 독립 출판물도 몇 권인가 책장에 꽂혀 있다. 한 번도 들지 않은 그 커다란 여행 가방은 버질 아블로가 브랜드의 전통에 오래되지 않은 과거를 과격하게 해체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을 비틀어 결국 지갑을 열게 한 사례가 아니었을까. 얼마 전 니고 NIGO®와 두 번째 협업을 발표한 이후 들른 남성복 매장 중앙에 놓인 마네킹이 전형적인 흑인 얼굴의 데포르메라는 걸 알았을 때, 내가 들른 다른 어느 브랜드 매장에 비슷한 시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는 혼자 감흥이 일었다. 그러고는 며칠 만에 그는 먼 길을 떠났다. 그가 더 높은 책임과 권한으로, 더 나은 아이디어와 영감으로 대중문화의 스타일과 문화를 바꾸고, 진정으로 다음 세대와 연결고리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실제로 그 정도 비전을 지닌 기업가 혹은 전문가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더 아쉽다.

라이카 Leica M10-R에 보이그랜더 Voigtländer 울트론 빈티지 라인 ULTRON Vintage Line 35mm f/2 ASPH 렌즈 2세대를 장착하였다. 월요일 밤, '혹시' 하는 마음에 장터를 뒤져 발견한 렌즈를 그날 밤 직거래로 샀다. (나처럼) 카메라를 좋아하는 분과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십여 분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나는 이 렌즈의 1세대를 이미 가지고 있고, 무게도 40g 가벼우나, 2세대가 황동으로 만든 본체 위를 '블랙 페인트'로 마감했다는 이유로 사버렸다. 렌즈와 카메라는 한 몸처럼 어울린다. 며칠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40g 차이가 별 게 아니란 생각이 들면 1세대는 판매할 것이다. 덕분에 며칠 열심히 뒤진 주미크론 Summicron은 당분간 안녕이다.

스튜디오에서 종일 새로운 '플로우'를 짜면서, 어쩐지 집중이 되지 않아서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서서 걷다가 집에 갈 생각이다. 그리고 내일 아주 일찍 다시 나와서, 못다 한 정리를 어느 정도 말이 되도록, 꽤 괜찮은 퍼즐처럼 뚝딱 맞추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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