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cle] Noblesse.com Weekly Briefing No.04 _ Mon, February 27, 2017


리뉴얼한 <노블레스 Noblesse> 매거진의 디지털 웹사이트, <노블레스닷컴 Noblesse.com>에 2017년 2월 둘째 주부터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 Noblesse.com Weekly Briefing'이라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패션을 중심으로 예술과 지역 문화 등의 소식을 브리핑 형식으로 올리는 콘텐츠입니다.

아래가 네 번째 원고이며, 웹사이트에 들어간 것과 조금 다른 수정 전 원본입니다. 편집한 최종 원고는 Noblesse.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Noblesse.com Weekly Briefing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은 지난 한 주간 벌어진 국내외 패션·문화·라이프스타일 소식 중 <노블레스>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들을 골라, 매주 월요일 소개합니다.

A. 혜인서, 런던 패션위크 데뷔




© HYEIN SEO Fall/Winter 2017 collection at London Fashion Week. Photography by Eva Al Desnudo.

최근 한국 젊은 패션 디자이너 중 가장 커다란 충격파를 일으키며 세계 패션계의 주목을 받은 디자이너를 고르라면, 단연코 ‘혜인서 HYEIN SEO’가 떠오릅니다.

안트워프 왕립 예술 아카데미 Royal Academy of Fine Arts Antwerp 석사 3학년 과정을 마무리하는 컬렉션으로 2014년도 가을/겨울 시즌 뉴욕 패션위크 기간 중 열린 브이파일즈 VFILES.com 컬렉션에 참가한 이래, 디자이너 서혜인과 이진호가 만든 ‘혜인서’ 브랜드는 그들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습니다.

유수의 패션 잡지들이 그들의 컬렉션으로 화보를 찍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패션 어워드 중 하나인 삼성 패션 디자인 펀드 Samsung Fashion & Design Fund를 수상하는 등, ‘반짝’하고 사라지는 무수한 디자이너 사이에서 특출한 재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서혜인을 수년 전 만났을 때, 그는 원래 패션 브랜드를 낼 생각은 없었다고, 좋은 소재를 매일 만질 수 있는 메종에 들어가 작업하는 것이 원래의 꿈이었다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강제’로 데뷔한 후 3년이 지난 지금, 혜인서는 뉴욕과 헬싱키,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착실하게 컬렉션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였습니다.

2017년 현재 혜인서가 지닌 힘의 원천은 스트리트웨어 streetwear를 재해석하는 독자적 감각, 사이버 펑크 cyber punk와 미래주의의 결합, 일본 만화와 비디오 게임 등 90년대와 2000년대 언저리를 관통한 소년·소녀들이 즐겼을 법한 취향을 함축하여 동시대 여성들, 그리고 그들의 옷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일부 남성들이 입기 좋은 기성복으로 변형하는 작업 그 자체였습니다.

이는 곧 젊은 디자이너 중 특별한 색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그 사이 혜인서는 뉴욕과 헬싱키에서 두 번의 런웨이 무대를 가졌어요. 런던의 머신 에이 Machine A와 도쿄 그레이트 GR8, 서울의 스페이스 무이 Space Mue에 이르는 훌륭한 편집매장에도 입점해 있습니다. 하지만 기성 디자이너나 브랜드와 달리, 인스타그램 계정 instagram@hyeinantwerp만으로 시즌이 시작하기 직전, 룩북을 공개하는 방식은 세계 곳곳에 퍼진 팬들의 욕구(?)를 충족하기엔 다소 아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조용히 지나는가 싶던 2017년 2월 중순, 겉으로 보이는 자유분방한 이미지와 달리 조용하고 신중하게 한발씩 내딛는 이 젊은 브랜드는 마침내 ‘런던 패션위크 London Fashion Week’ 데뷔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 HYEIN SEO Fall/Winter 2017 collection at London Fashion Week. Photography by Eva Al Desnudo.

앞서 말한 것처럼 혜인서는 이미 두 차례 런웨이 무대를 치렀지만, 데뷔 초기였던 두 번의 무대가 다른 디자이너들과의 합동 무대였지요. 오롯이 자신의 브랜드에 집중한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란 뜻입니다. 혜인서의 꾸준한 조력자 중 하나인 런던 편집매장 ‘머신 에이’는 파리와 밀라노, 뉴욕과 서울 그리고 도쿄 등 다양한 선택지 중 신진 디자이너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에 가장 적극적인 ‘런던’을 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겁니다.

2017년도 가을/겨울, 혜인서 컬렉션의 주제는 ‘최종 보스 Final Boss’입니다. 거리 패션과 만난 고급 기성복이 시대의 흐름이자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지금, 더 깊숙이 자신들의 세계관을 표출한다는 점은 ‘상업성’과 ‘개성’을 동시에 조율해야 하는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가 처한 냉엄한 현실이죠. 혜인서는 그 해답으로 일상복과 그들의 꾸준한 취향 안에서 지속하여 발전하는 ‘디테일’을 제안합니다. 




© HYEIN SEO Fall/Winter 2017 collection at London Fashion Week. Photography by Eva Al Desnudo.

푸른색 유도복과 붉은 점프 수트, 과감하게 어깨를 잘라낸 간결한 검정 니트웨어는 붉은색과 흰색 줄무늬, 도형과 사이버 펑크 그래픽으로 장식한 배경과 무대 바닥과 만납니다. 이번 시즌에는 지난 컬렉션들에 선보이지 않았던 스타일이 몇 가지인가 더 포함되어 있지만, 사실 중요한 지점은 여전히 ‘거친 rough’ 요소를 가득 담아, 하나의 완성된 디자인으로 향한다는 점입니다. 

90년대 비디오 게임과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봤을 법한 음울하고 음침한 세계관이 은유처럼 옷과 그래픽으로 담겼지만, 바이커 재킷부터 아노락 점퍼까지 혜인서의 대표적인 의상들은 모두 동시대 여성들을 위한, 또한 여성들에 의한 ‘저항’ 정신을 담아내는 듯 보입니다.



B. 천재 사진가 렌 항, 세상을 등지다


© Ren Hang’s <Naked/Nude> exhibition at Foam Fotografiemuseum Amsterdam. Installation shot by Christian van der Kooy, 2017.

한국 시각으로 지난 2월 25일 밤,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중국 지린성 창춘 출신 Chang Chun, Jilin Province으로 베이징 Beijing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사진가이자 시인, 렌 항 Ren Hang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였습니다. 이는 마지막으로 그와 교류를 나눈 갤러리와 예술가 친구들에 의해 공개되었습니다.

1987년생으로 한국 나이 서른한 살, 만 나이로 다음 달이면 서른 살이 되는 사진가였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그의 사인이 아직 명확히 공개되진 않았으나 평생 우울증과 싸워 온 그가 독일 베를린 Berlin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합니다.


© Ren Hang, photographer and poet, 1987 – 2017.


© Untitled, Inkjet print, 67 x 100 cm/ 27 x 40 cm by Ren Hang, 2014.

개인적으로 그의 사진을 처음 접한 건 친한 영상 감독의 스튜디오에서 본 호주머니 크기의 작은 자가 출판 사진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직접 본 것은 작년 9월, 파리의 갤러리 파리-베이징 Galerie Paris Beijing에 놓인 사진 몇 점이었습니다.

그의 웬만한 사진은 웬만한 종이 매체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모자이크 없이는) 절대로 올릴 수 없습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과 독특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기괴한 누드와 풍경 그리고 초상 사진들은 중국 당국의 탄압과 제재를 받아왔습니다.

그의 사진 속, 불안한 정서를 띤 젊은 중국 청년들은 마치 천편일률적인 정치 상황에 대한 반발처럼 보이기도 했지요.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은 패션과 사진계뿐만 아니라 <시엔엔 CNN>이나 <타임 TIME>처럼 국제 정세를 다루는 종합 언론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중국의 반정부 예술가 겸 큐레이터 ‘아이 웨이웨이 Ai Weiwei처럼 말이죠). 하지만 렌 항은 자신의 작업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거나 논쟁의 중심에 서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계획 없이’ 사진을 찍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작업이 나온다는 말을 생전 인터뷰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요. 과거 어떠한 사진 미학에도 속하지 않은 듯 보이는 렌 항의 작품은 흔히 얘기하는 ‘참조 reference’ 과정이 생략된 느낌을 줍니다.


© Untitled by Ren Hang, 2015. Image courtesy of Stieglitz19.

사진을 공개할수록 논쟁의 중심에 선 상황과는 역설적으로, 외국 유수의 사진가들과 갤러리, 박물관과 예술 서적 출판사 그리고 패션 잡지와 브랜드가 끊임없이 구애한 것은 ‘새로움’을 찾는 데 목이 마른 많은 이가 단비처럼 느낀 예술가였다는 방증입니다.

렌 항의 사진은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누구도 그 천부적인 재능에 의문을 제기하진 않았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동시대 사진이 비슷하고 지루한 모습을 띠어도, 누구도 그의 사진들이 독자적이며, 오롯한 창조의 영역 안에 숨 쉬고 있다는 걸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렌 항이 사망하기 전, 가장 활발하게 작업한 잡지 <퍼플 패션 매거진 Purple Fashion Magazine>의 발행인 올리비에 잠 Olivier Zham은 그를 추모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에서 렌 항을 '모든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는 사진가이자, 새로운 (노부요시) 아라키 He inspired all the young generation of photographers. He was to me the new Araki.'라고 언급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의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으로 2000년대 초반 ‘청년 문화 youth culture’를 재정립한 사진가 라이언 맥긴리 Ryan McGinley 역시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 Untitled, Inkjet print, 67 x 100 cm/ 27 x 40 cm by Ren Hang, 2012.



© Naked/Nude exhibition at Foam Fotografiemuseum Amsterdam, installation shot by Christian van der Kooy, 2017.

생전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된 <네이키드/누드 Naked/Nude> 전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포암 사진 박물관 Foam Fotografiemuseum Amsterdam에서 오는 3월 17일까지 열립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동시대 가장 훌륭하고 독보적인 재능을 지닌 사진가가 너무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습니다.

Written by Hong Sukwoo 홍석우
Fashion Journalist, <The NAVY Magazine> Editor/ Fashion Director.

서울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컨설턴트, 수필가인 홍석우는 패션 바이어와 스타일리스트, 강사 등을 거쳐 미국 스타일닷컴 Style.com 컨트리뷰팅 에디터와 서울의 지역 문화를 다룬 계간지 <스펙트럼 spectrum>과 <어반라이크 Urbänlike> 편집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의 거리 사진을 올리는 블로그 ‘yourboyhood.com’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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