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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삶 — Tue, March 10, 2020


찌뿌둥한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집안일을 어느 정도 정리한 다음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집을 나서 스튜디오로 간다. 신사동이 아니라 성수동으로 가는 길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면 요리조리 다른 길을 거닐다가 택시를 잡고는 한다. 청소하고 정리하고 공사에 들어가기 전, 미리 할 일을 몸소 조금씩 하고 나면 느지막한 새벽에 잠이 들더라도 역시 평소처럼 새벽에 번뜩 눈이 떠지는 일은 별로 없다. 정직하게 노동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시간만큼 잠을 잔다. 주말 일부가 뚝 떨어진 것처럼 두 주 연속으로 사라진 이유였다.

걸으며 종종 생각에 잠긴다. 얇은 더플코트를 입고 손에는 방수가 미세하게 되는 카메라를 들고, 이제 봄이 오는가 싶은, 나쁘지 않은 여우비를 맞으며 걸을 때마다 이런저런 말이 머리에 맴돈다. 내일의 약속이나 모레의 만남 같은 것부터 아직 쓰지 않은 원고 마감과 새로 장만해야 할 스튜디오의 정문 같은 것을 떠올린다. 옮긴 동네의 밤은 가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스산하다. 날이 포근해진다고 해도 과거 공업 지구가 지닌 차가운 금속의 맛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온몸이 뻐근하여 금세 눈이 감길 것 같다가도 종종 사색하는 밤, 사색의 삶을 떠올린다. 남들처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은 나날을, 오르막과 내리막 같은 것을, 다짐하곤 실천하지 못한 일과를, 일주일이 닷새처럼 빠르게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생각한다.

책임질 것이 있으면서 책임질 것이 없는 삶을 산다. 코트를 넣었다가 도로 꺼내게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봄의 절정과 산책의 기분을 상상한다. 겨울이 가는 노래들, 60년대의 외국 재즈 음반들, 만들기로 한 불투명한 칸막이의 구조 따위를 마음의 넓은 공터에 던져두고 제각각 다른 사람의 의견처럼 하나둘 꺼냈다가 집어넣었다가 한다.

지난 일요일로써 듀펠센터 Duffel Centre의 서점 ‘산책 BOOKWALK’은 1년을 맞이하였다. 서점만 놓고 본다면 스스로 아쉬운 점이 많은 나날이었다. 책을 보고 책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평소보다 더 읽는 봄이 되었으면 한다. 그사이 떠오른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제법 각별한 계절이 되리라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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