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cy Lang









Seoul, S.Korea
wed, September 02, 2009

Nancy Lang 낸시 랭 (31), artist


place: [캘린더 걸 Calendar Girl 2010], an solo exhibition of Nancy Lang, Jang Eun Sun Gallery, Gyeongun-dong, Jongno-gu

all clothes brands _ unknown

homepage: www.nancyl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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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일 수요일 저녁, 사그라드는 햇빛이 마지막 힘을 다할 즈음, 나는 인사동 어느 골목을 걷고 있었다. 낸시 랭 Nancy Lang의 [캘린더 걸 Calendar Girl 2010] 개인전이 열린 장은선 갤러리는 이미 많은 이들로 붐볐다. 전시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1940년대와 50년대의 미국식 자본주의, 그리고 마릴린 먼로 같은 희대의 섹스심벌로 대표되는 '핀업걸 Pin Up Girl'에 대한 낸시 랭식 해석이다.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와 그녀의 자아와의 표현 관계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설명은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할 테니 지금 하진 않겠다. 표지까지 13개의 사진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에서 그녀는 여러 인물을 표현했다. 여왕, 거지, CEO, 파티걸 등의 캐릭터가 그녀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특유의 포즈로 걸려 있었다. 한 작품을 뺀 나머지 사진은 모두 35mm 필름 카메라로 찍은 것이고, 레스 Less라는 사진가 듀오(김태균, 윤상범)가 촬영을 맡았다. 딸기, 레이스 속옷, 비키니 수영복, 모피, 명품 가방, Fuck Off라고 쓰여진 수면안대 같은 것들이 사진 여기저기 드러나 있다. 모든 사진 위에는 아크릴 물감 칠이 되어 있다. 사전에 공들여 준비한 것인지, 모두 치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가 생각해본다. 나로 말하자면, 즉흥성 또한 충분히 사진 작업을 비롯한 예술 작업의 요소가 될 수 있으므로 누군가 만든 '엄격한 기준'에 그녀를 들이밀고 싶지는 않다. 그녀의 캘린더 걸 사진과 새로운 몇 점의 회화와 멀티미디어 작업이 작은 갤러리를 꽉꽉 채웠다.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 사이트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고인이 된 안타까운 배우 장진영의 소식을 가장 처음 접한 것도 포털사이트의 뉴스란이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 또한 그랬다. 항상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혹은 DMB폰을 끼고 살지 않는 사람에게 인터넷이란 또 다른 그러나 가장 강력한 미디어이다. 그중 대한민국에서 유독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포털사이트에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검색어가 하루에도 몇 번 씩이나 바뀐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노라면 당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대강 파악할 수 있다. 최근 '엣지 Edge'라는 단어가 뜬 것도, SBS의 드라마 [스타일 Style]이 역작이라기보단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권을 노리는 황색 인터넷 매체들의 발버둥이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갑자기 검색어 순위권에 오른 단어는 '낸시 랭'이었다. 낸시 랭.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그 이름 석자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녀는 팝아티스트 혹은 아티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여타 예술가들이 하는 것처럼 작업실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고, 상업 갤러리 혹은 미술관의 초대를 받아 전시하고, 작품을 판매한다. 그것을 구입하는 갤러리와 수집가들이 있다. 여기까지는 무척 평범한 예술가의 모습이다. 그러나 당대의 다른 국내 예술가들과 달리, 그녀는 마치 연예인처럼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고, 예술가치고는 너무 많은 대중에게 알려져 있으며, 예술가치고는 너무 자주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 오른다. 심지어 그 순위에 오른 내용은 보통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관련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무슨 자신감인지, 당당한 태도와 노출을 장려하는 듯한 이미지들이 꾸준히 함께 한다. 그런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일까.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간다.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극단적으로 싫다는 사람들을 많이 본 것 같기도 하다.

팝아트를 하는 예술가로 자신을 소개하는 낸시 랭. 케케묵은 이야길 또 꺼내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팝아트란 무엇일까.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끊임없는 답을 추구한 20세기에 나온 예술의 한 장르로, 팝 Pop이라는 단어 그대로 대중과 대중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중적인 아이콘과 공산품을 차용한 것이 1세대 팝아트라면, 지금의 몇 세대인지 구분하기 힘든 팝아티스트들은 아예 자기 자신을 팝의 세계로 던져버린다. 예술사에 무지한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시초격이라는 미국의 앤디 워홀 이후, 적어도 한국에서는 낸시 랭처럼 예술을 한다고 욕을 먹는 '자칭' 아티스트란 없었다. 그녀는 예술과 예술가라는 경계에 대해서, 되려 기존의 작업을 답습하는 이들에 대해 교묘한 시선을 던지고 또 던진다. 비판도 비난도 아니고, 엄밀하고 정교한 논리도 그 안에서 찾아내기 힘들지만, 그런 돌출과 계산의 줄타기가 대중에게 확실한 파문을 던진다. 개인전을 한다고 매체들이 '외설 논란'을 꺼내는 것은 이미 20세기에 유효기간이 지난 이야기인데, 이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상품성과 예술에 대한 견해를 툭 까고 당당하게 - 혹자는 뻔뻔하게라고 말하겠지만 - 드러내 예술가라는 것 자체가 논란이 되는 인물은, 아마 낸시 랭 정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남들이 치부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녀는 밝힌다. 남들이 점잔을 빼는 분야를 그녀는 즐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당당하게 나는 그렇소이다, 라고 인정하기 싫은 오묘하고 불편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논쟁은 다시금 시작된다. 이것은 대놓고 그녀를 무시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게임이다.

네이버 뉴스란에 도배가 되어 볼 수 밖에 없었던 '슬리핑 퀸 Sleeping Queen'이라는 사진 작업을 보자. 낸시 랭은 자다 일어난 여왕을 표현한 소파에 널부러져 있고, 한 손에는 결제를 기다리는 서류를 쥐고 있다. 왕관 비스므레한 것을 쓰고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그리고 팬티가 보인다. 인터넷 매체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의 다른 12개의 작품도 아니고, 사진이 주는 상징성이나 전시 서문이 들어간 보도자료를 그대로 보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팬티인 것이다. 굉장히 단순한 구조다. 그리고 '의외로' 잘 먹힌다. 팬티. 이게 야하고 자극적인가? 보는 이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비판이라면, 그녀가 하는 작업들을 갈무리한 다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돌아온 것은 몇 개의 반응이다. 누구는 낸시 랭의 사진을 보려고 클릭했을 것이다. 누구는 또 낸시 랭이냐, 하며 지겨웠을 것이다. 누구는 그녀의 반복적인 모습을 보며 이제 바꿔야 하지 않을까, 했을 것이다. 누구는 그녀의 팬이었을 것이고 누구는 그녀의 작품을 탐구하고 싶어서 공식 웹사이트에 들어갔을 것이다(그저께 그녀의 웹사이트는 트래픽 초과로 열리지 않았다). 어떤 관점을 가지든 그들 자신의 자유이다. 명백한 것은 낸시 랭 이전과 이후 그 누구도, 고작 개인전 하나로 이러한 관심을 끌어낸 사람은 적어도 예술계에서 흔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캐릭터는 범접하기 힘든 손발이 오그라드는 포스를 풍기기 때문에 앞으로도 단시간 내에 아류가 나올 가능성도 무척 낮다. 이러한 모순이 되려 그녀가 '아티스트'라고 주장하는 것에, 어떤 통쾌한 감정이 들게 한다. 어려운 단어로 나열된 전시 서문과 정체된 공기를 띤 갤러리의 전형성에 대한 사소한 쿠데타 같은 기분이 든다.

몇몇 인터넷 매체가 시작한 낸시 랭 검색어 올리기 게임은, 하나의 개인전 이상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예술계가 보기에 그것이 삐뚫어진 방법이라 할지라도, 낸시 랭이 모토처럼 말하고 다니는 '대중에 대한 예술의 전파'는 좋든 싫든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낸시 랭은 아티스트인가 아닌가, 혹은 낸시 랭의 작품은 쓰레기인가 아닌가 하는 것들이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낸시 랭이 그것을 즐길 것이라고대답할 것이다. 누군가 내게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녀의 작업 혹은 작품성에는 중립의 입장이지만 그녀가 행하는 모습에선 예술의 기운을 듬뿍 느낀다고 할 것이다. 그녀는 확실히 예술가다. 이번 [캘린더 걸] 도록 겸 달력의 서문을 쓴 화가 강영민이 그랬듯이, 예술과 예술가라는 것은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자신이 예술가라고 말한다면, 그냥 예술가인 것이다. 되려 그녀의 예술에 대한 '자격 논쟁'이란, 우리나라 예술계가 가진 폐쇄성과 기존에 없던 모델을 인정하지 않는 보수적인 아니꼬움이 아닐까. 그녀가 한낯 무명의 배고픈 예술가가 아니고, 미디어에 자신을 무기로 어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예술계 인물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공든 탑에 아랑곳않는 당돌한 여성에 대한 철의 장막 - 홀대, 무관심, 무시, 평론 거부 등 - 이 알게 모르게 펼쳐진 것은 아닐까.


오프닝 리셉션이 끝나기 얼마 전에 갔기 때문에 올 사람들은 다 오고 몇몇 사람들이 막판 스퍼트 중이었다. 전시 기획자로 참여한 강영민씨의 소개로 호리호리한 체격에 선글래스를 낀 남자와 인사했는데, 이름이 낯익었다. 서동욱? 아, 맞다. 외국의 스트리트 스냅 같은 것을 사실적인 그림으로 옮기고 얼마 전 글을 썼던 잡지에서 배우 김민희를 그린 작업을 본 게 기억났다. 그는 나와 인사 정도만 주고 받고, 옆에 있던 강영민씨와 주로 이야길 했다. 강영민씨가 쓴 이번 전시 서문에 대해 말하다가, 서동욱씨가 말한 부분이 자꾸 기억에 남았다. '평소에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가지고 쓴 글이 전시 서문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 동시에 드는, 작품만 보고 작품 자체에 대해서만 쓰는 미학적인 글쓰기가 과연 한 예술가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최선일까, 하는 의문. 작품만이 아닌 '작품을 하는 인간'에 대한 의문과 이해. 결국 글이 필요한 장르란 다 비슷한 것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중구난방이지만 한 번 써봤다.

image courtesy of Nancy Lang
www.nancylang.com


written and photographs by Hong Sukwoo 홍석우 (yourboyhood@gmail.com)
fashion journalist / photographer of yourboyhood.com

Comments

  1. 글쎄요..우선 글 잘읽었습니다..그런데 낸시랭이 표현하는 바가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트레이시처럼 자신의 삶의 굴곡적이었던 부분들을 반영해서 작품으로 만드는것도 아니고 자신을 내세워서 퍼포먼스를 하는것도 별다른 의미가 있어보이지 않아요.. 좀 냉소적으로말하면 자기PR,혹은 자신을 홍보하고싶어서 안달난 사람처럼보여요.(고 안재환씨 장례식때 화려한옷에 이름표를 달고와서 논란이있었죠)가끔 미디어에서 낸시랭- 이라는 단어와 기사가 나올때마다 자극적인표현들을하면서 앞뒤안가리고 이유없이 비판하는사람들은 저도 싫어하는데요 '예술가'라면 물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 내포되어있는 작품이나 행위가 인정되는것이 요즘 현대미술의 특징이겠지요..
    하지만 낸시랭의 작품은 언급하신 자격논쟁을 떠나서 저 행위를 통해 낸시는 무엇을 나에게 말하려는걸까 라고 곰곰히 생각해봐도 명확한 답변은 나오지 않더군요(터부 요기니 시리즈로 예를들면 물질주의 욕망을 팝아트적인 요소로 비판했다 등의 해석이 있는데 몇개의 이미지를 그냥 콜라주 한거구나라는 생각이 그녀자신이 만든 의도보다 더 크게 느껴졌었습니다)현대미술을 이해한다는건 넓은 포용력과 편협하지 않은 시선이 필요하기때문에 저도 낸시랭의 행위나 작품 자체에 대에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요. 예술가로서 자신의 생각을 어떤식으로든 표현한다는것자체가 그들에겐 창조의 '행위'그 자체니까요. 그렇지만 그녀가 대중들에게 비판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이고 그녀의 생각을 왜 이렇게 나타낸건지에 대해서 좀더 철학적인면을 담아서 보여준다면 그녀에 대한 재평가가 좀더 긍정적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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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he women with the cat on her shoulders, I've seen her on many variety shows.. She's funny, and not to mention very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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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는 대중적인 미디어를 통해서라기보단 낸시랭 씨가 쌈지브랜드와 기획한 "타부"를 보고 관심을 갖고 알게되었습니다. 정확하게 미술과 디자인이란 무엇이고 그 매개체에서 분별없이 한 사람으로 묶어버리는 그런 세계도 싫고 크리틱도 싫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란 한 매개체에서 대중적인 생각이 나오며, 그 대중적인 생각을 풀어나가는 것이 미술가이며 디자이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혹평과 비판으로 인해 예술이 존재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비난과 시각과 견해의 차이가 존재하지않는 세계라면 예술도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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