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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블렌디드 위스키 _ Wed, July 26, 2017


무더위 탓인지 기분 탓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이유 탓인지, 한동안 '위스키'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1994년 이후 최고로 덥다는 2017년 여름, 그중에서도 두 번째로 높은 기온을 찍었다는 한낮 서울 바깥에 있었다. 처음 생각난 건 벌컥벌컥 들이켜고픈 차가운 물 한잔이었다. 그다음은 맛이 균일한 체인점 커피숍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커피를 빨대로 한 모금 빨면서 어쩐지 위스키를 생각했다. 숙성연도가 높은 위스키는 조금 특별한 날을 위해 미루고, 좀 더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발렌타인 파이니스트 Ballantine's Finest 같은 것. 벌써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는 지난봄 그라더스 grds 아카이브 전시 준비 때, 밤의 친구와 다름없던 그 위스키를 왜 몇 달이고 마시지 않았을까. 왜 불현듯 떠올랐을까.

전형적인 한국 남자로 자라며 술 취향은 어쩐지 어릴 때부터 소주에 기울어졌다. 위스키라든지 와인 같은 술이 패션 같은 문화와 조우하며, 조금 '젠체'하는 거드름 비슷한 기운도 느꼈다(편견이라면 편견이다). 하지만 친구와 다녀온 여행이라든지, 몇 가지 사소한 이유로 고정관념이란 그야말로 사소한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마시는 공간이나 시간, 사람 나름이다. 어두침침한 지하세계에서 거들먹대며 따는 수십만 원짜리 위스키는 '그런' 술의 기억을 만든다. 낮에 열심히 일하고 와서 입원한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하다가, 좀처럼 끝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청소와 정리, 굳이 오늘 하지 않았어도 될 일들의 마지막에 와서야 처음 들어보는 '순수한' 연주 음악에 문득 시원하고 조금 도수가 느껴지는 위스키를 한잔 마시고 싶어졌다. 음미하며, 한잔이 아니라, 35도에 육박한 여름 한복판이었으니까, 하며 얼음을 잔뜩 넣었다. 위스키 원칙론자들이 보면 기겁하려나. 어쩐지 이렇게 혼자 마시는 한잔에 괜히 기분이 즐거워진다.

가끔 사람은 어떤 '물건'들에 자신을 대입하여 생각한다. 카메라, 자동차, 음향기기, 시계, 담배, 집, 또 뭐가 있을까. 요즘은 내가 해왔고 해야 하는 작업에 의식의 흐림이 쏠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 스카치위스키 중에서도 블렌디드 위스키 Blended Whisky 한 분야만 파고든 이 기업의 술에 괜히 자신을 투영해보았다. 

가령 스스로 생각할 때 '패션 fashion'을 중심에 두고 한 분야를 꾸준히 파고들었다. 그 안에 거친 사회적 '직업'을 떠올리면, 처음 4대 보험이 든 월급을 탄 직장에선 패션 바이어 fashion buyer였다. 스타일리스트 stylist라든지 강사 lecturer, 혹은 편집장 editor-in-chief이나 편집자 editor 같은 역할을 거치며 지금까지 왔다. 때론 팀이 있었고 때론 혼자였다. 힘이 들거나 외로운 기분도 느꼈다. 그럴 때 마음이 맞고, 또 무엇보다 술의 취향이 맞는 친구들과 밤새도록 잔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어리석었다고 느꼈거나, '그땐 그럴걸' 후회하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성취라면 성취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의 그림자들이 스멀스멀, 빛의 반대쪽에 언제나 존재했다. 항상 지역 local과 사람 people을 생각하며 무언가 작업하고 싶었다. 아직도 그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스키도 비슷한 점이 있다. 이미 이름을 드높인 소위 술의 '명가'들은 웬만한 패션 하우스들만큼 오래되었고, 당연히 그 안에 역사가 유구하다(이건 '아카이브 archive' 쌓은 작업을 하고 싶다는 개인적 욕구와도 겹친다). 하지만 어떤 '오래된' 것들은 오래되었다고 평가받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이 온다. 어느 정도 그대로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안주하다가도, 눈을 떠보면 세상 많은 것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바뀌어 있다. 

오래된 위스키에 감정을 이입한 이유도 비슷하다. 나무 책상 위 노트북 컴퓨터 옆에 두고 홀짝, 혼자 마시는 위스키의 방식은 누구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다. 그저 마시고 싶은 욕구에 충실하였고, 딱히 위스키답다든지 멋지다든지, 이미지로 보이는 방정식과는 하늘과 땅처럼 틈새가 넓다. 사실 이 위스키 브랜드를 소비한 수많은 주당의 역사란 그렇게 스스럼없는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평상복보다는 격식 차린 정장, 혹은 말쑥한 고급 갑옷 아래 자신을 감추고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편히 자신을 놓아버린 수많은 '아재'의 역사가 이 땅 위 위스키의 역사였는지도 모른다(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랬을 거다). 

얼음이 곧 녹아버려서 다시 한 움큼 다시 쥐어 부모님이 결혼하셨을 때 가져온 크리스털 잔에 턴다. 졸졸 위스키를 따른다. 특별할 것 없는 각진 사각 얼음이 십 년 남짓 숙성한 위스키와 만나면 연하게 노오란 빛을 띤다. 한 모금 넘기니 목을 적시고 잠시 쓴맛이 혀를 타고 넘어가며 그윽한 향이 혼자만 알 정도로 풍긴다. 어떤 작업들은 한없이 진지하다가도, 종종 '이런' 느낌의 무언가가 훗날 돌이켰을 때 그만큼 균형을 이루었으면 한다. 문득 떠오르는 친구 같은,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좀 더 친숙하게 드러나는 무언가를 남들이 '왜 지금'이라고 물음표를 드러낼 방식으로 켜켜이 쌓고 싶다. 

새벽에 술을 마시니 혼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Seoul, S.Korea
Wed, July 26, 2017


Ballantine's Finest


photographs by Hong Suk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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