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크드 Flaked _ Fri, June 16, 2017
에스테반 형(<블링 Bling> 편집장)이 페이스북 댓글로 남긴 추천을 보고 시작한 <플레이크드 Flaked>.
나의 넷플릭스 Netflix 취향은 말초적인 스릴러 장르와 미국 고교생들이 나오는 추리 및 성장물, 그리고 몇몇 다큐멘터리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윌 아넷 Will Arnett은 그럭저럭 좋아하는 배우였지만 그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단 한 편의 영화는 없었다. 그런 채로 <플레이크드>를 봤다. 대충 풀어헤친 셔츠에 그을린 팔뚝, 반바지와 낡은 스니커즈, 나무 상자를 단 자전거, 그리고 친구에게 빌린 올리브색 면 재킷.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즈 Band of Outsiders'처럼 단정한 프레피 룩 스타일인가 싶다가도, 어딘지 모르게 서서히 엇나간 남성이 그렇게 잘못된 인생을 밟고 살았다면, 싶은 '매력'의 사내가 첫 화면을 점령했다. 적당히 뺀질거리고, 적당히 진지하며, 그래서 사람들을 끌어들일 줄 아는,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속마음은 알기 어려운 남자. 윌 아넷은 이 무척 '로스앤젤레스다운' 드라마의 제작을 하고, 주연도 하며, 각본까지 썼다(두 번째 시즌의 몇 화만 빼고). 그가 연기한 '칩 Chip'은 공식 포스터 문구처럼, 한 걸음을 내디디고 열두 걸음 되돌아오길 반복한다.
처음에는 햇살 좋은 캘리포니아 베니스 비치 Venice beach를 배경으로 한 적당히 유쾌하고 적당히 실없는 블랙 코미디인 줄 알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알코올 중독자 모임을 중심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각자 어느 정도 부족한 부분이 있고, 실수를 반복하며, 종종, 아니 꽤 자주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윌 아넷이 연기한 주인공 '칩'부터 상대역이자 여성 주인공 '런던 London' 역의 루스 키어니 Ruth Kearney가 극을 이끄는 듯하지만, 사실 칩을 둘러싼 친구들과 조연급 인물들 각자 비중이 다를 뿐 서로 연결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이야기가 서로 모이니 오묘한 화학 작용이 일어나, 제법 몰입감 있게 펼쳐진다. 끈덕지게 달라붙어 질척거리고 종종 짜증이 나도, 매몰차게 떼어내기보단 한숨 푹 쉬고는 다시 돌아오는 야밤 술자리의 진지한 고민 같은 내용이 한 화, 삼십 분 남짓한 에피소드마다 차근차근 이어진다.
작년 공개한 시즌 1 이후, 2017년 6월 2일 공개한 시즌 2까지 막 다 보았다. 첫 시즌을 여덟 에피소드로 구성하여 등장인물이 어떻게 한 동네에서 엮이며, 또 해결하고 말려드는지 이야기했다면, 두 번째 시즌은 여섯 에피소드로 더 '적은'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첫 시즌을 마치고선 몇 달 후를 배경으로, 여섯 개의 에피소드에 각자 하루씩을 부여하여 딱 일주일 새 벌어진 일들이다.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에겐 개인적인 의구심이 들었는데(과연 필요한 사람들인가? 하는), 결말까지 보고 나니 몇몇 주연급 배우를 선택하고 집중한 '비중의 분배'는 제작자의 의도 아닌가 싶다. 성차별적인 얘기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남자 주인공과 그들의 친구들이 겪는 일을 보면 남성 시청자들이 더 공감할 수도 있다. 하나 더, 미국 사회의 치료 모임 같은 것이 한국에 보편적이지 않으니, 문화 자체를 공감한다기보단 조금 다른 영역의 끄덕임이 종종 온다.
극중 인물들이 사는 베니스라는 동네는 서울로 치면 아직 망가지기 전의 가로수길이나 홍대, 혹은 부산 해운대 느낌을 교집합으로 지녔다. 말쑥하게 꾸민 동네의 여러 매장과 가게들, 그리고 골목 곳곳에 비추는 온화하고 따스한 햇볕을 보는 재미도 있다. 특히 동네 이야기가 주요 내용으로 들어가는 첫 시즌에선 '지역'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오롯이 주인공 역할을 한다. 스포일러 없이 쓰려니까 어렵다.
참, 처음에는 '블랙 코미디'처럼 보여서 몇 화 보다 말려고 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넷플릭스는 내게 시간 죽이기용 스릴러 전용 채널 정도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더 나았다.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였다면, 작은 극장에서 보고 꽤 재밌었을 거다. 생각 많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찝찝하지 않은 여운이 남는, 그런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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